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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호치민

tulipmania 2009. 10. 25. 15:25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 함락.
사이공 함락의 또 다른 작전명 ‘호치민 운동’

1858년 프랑스 베트남 침공 이후 프랑스 베트남 식민지화.
1911년 프랑스 여객선 식당 보조로 베트남을 떠난 21살의 청년.

“베트남 사람들은 프랑스의 굴레를 벗는데 어느 나라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 했다.
나는 내 눈으로 직접보기 위해 해외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국 저널리스트 ‘애너 루이즈 스트롱’ 과의 인터뷰 중에서>

적국 프랑스에서 배운 두 가지 진실.
급진적 자유주의 사상 그리고 제국주의 식민지 노예들의 참상.

1918년 프랑스 사회당 가입.
하지만 당은 이념을 앞세우고 식민지 국가 문제를 등한시했다.

“식민주의를 비난하지 않고 압박받고 있는 사람들을 옹호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이 주장하는 혁명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자유와 독립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나를 이끈 것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애국심이었다.

‘구엔 아이 쿡’ (Nguyen Ai Quoc)' ; 애국자 구엔‘

이름으로 ‘애국’을 택한 사람.

1941년 2월 8일. 5명의 동지와 함께 새 이름 ‘호치민’으로 30년 만에 귀국.
하름한 옷, 낡은 신. 지도자 대신 ‘호 아저씨’로 불려진 호치민.

먼저 알고 있는 자는 모르는 자를 가르쳐야한다.
민중이 이해할 수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혁명적인 이론이 될 수 없다.
혁명을 하고도 민중이 여전히 가난하고 불행하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1945년 9월 2일 ‘베트남 민주공화국’ 독립선언.
호치민이 선택한 선언문은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강조한 프랑스 인권선언문이었다.
하지만 프랑스는 베트남의 완전한 독립을 허락하지 않았다.

1946년 9월 프랑스 소령 장 생트니를 만난 호치민.

“우리가 당신네 한 사람을 죽이는 동안 당신들은 열 사람을 죽이겠지요.
하지만 우리 땅에서 먼저 없어지는 것은 당신들이 될 거요.“

호치민의 자신감은 변화된 베트남 민중들의 모습에서 나왔다.
베트남 민중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독립과 자유보다 소중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1954년 5월 7일 디엔비엔푸 전투.
프랑스 군 1만 명 항복, 5천 명 전사. 80여 년의 식민통치 종결.

파리 시내 한 벽화, ‘20세기를 만든 사람들’
그곳에 호치민이 있다.

이후에도 베트남은 미국과의 전쟁으로 150만 명 사망, 300만 명이 부상을 당했다.
베트남은 전쟁에서 미국을 이긴 유일한 국가가 됐지만, 호치민은 베트남의 승리를 끝까지 보지 못한 채 1969년 9월 2일, 24번째 독립 선언 기념일에 지병으로 심장이 멎는다.

- 지식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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