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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나는 취재를 하기 위해 서울의 한 철거촌에 갔습니다.
어느 세입자 가정의 마지막 식사 자리. 목이 메인 가장은 밥을 잘 넘기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식사 자리를 지켜주기에는 벽은 너무 얇았습니다.
뚫려버린 담벼락 밑에서 나는 철거반원들에 맞선 주민들 속에 섞였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다니던 잡지사 부근의 문방구에 들러
볼펜 한 자루와 작은 공책 한 권을 샀습니다.
그것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시작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아저씨는 평생 동안 아무 일도 안 하셨습니까?”
“열심히 일했어.”
“그럼 무슨 나쁜 짓을 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없어.”
“그렇다면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습니까?”
“기도도 올렸지.”
“그런데, 이게 뭡니까? 뭐가 잘못된 게 분명하죠? 불공평하지 않으세요?”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버려.”
“그래, 죽여버릴게.”
“그래. 꼭.”
“꼭.”
<20세기 한국문학사 10대 사건 및 100대 소설> 설문 조사 결과,
최고 문제작으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선정.
한국문학사 최초로 출간(1978년)된 지 28년 만에 200쇄 기록.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200쇄를 기록했지만,
지금 상황은 처음 이 소설을 쓰던 때와 똑같아 보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날마다 자본에게 매를 맞고 착취당하고 있어요.
회사 사람들과 우리의 이해는 늘 상반되었다.
사장은 종종 불황이라는 말을 이용하고는 했다.
그렇지 않을 때는 힘껏 일한 다음,
노-사가 공평히 나누어 갖게 될 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희망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를 주지 못했다.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중에서
2005년 11월 15일 농민대회.
그날 나온 경찰 부대는 막강한 부대였습니다. 난 물대포가 그렇게 센 지 몰랐습니다.
그때 난 잠깐 후퇴했습니다. 왜냐? 무서우니까요.
그때 어느 부대가 또 급습했습니다.농민 하나가 퍽하고 쓰러졌습니다.
옆에서 신음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습니다.
다른 농민 한 명이 나더러 도망가라고 했습니다.
그때 난 영혼이 푹 쓰러졌습니다.
그들은 거짓말쟁이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많은 계획을 내놓았다. 그런데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의 고통을 알아주고 그 고통을 함께 져줄 사람이었다.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중에서
억압의 시대를 기록한 이 소설이 아직도 이 땅에서 읽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30여 년 전의 불행이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200쇄 출간은 부끄러운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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