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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의 ‘교과서 수정안’, 친일·친미 치우쳐
“일제때 토지 조사사업, 수탈 아닌 ‘제도 확립’”
‘미국 경제원조’→ ‘국민 생명줄’내용 추가 요청
한겨레 김소연 기자 정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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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공회의소가 교육과학기술부에 교과서 수정을 건의하면서 “우리 민족이 자주독립 국가 수립 능력을 가졌는지 의문”, “할리우드 대자본의 물량공세 운운은 반미적 언급”이라는 등의 반민족·친미·친일적 역사 인식을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민족문제연구소·전국교과모임연합 등 10개 단체는 20일 대한상의가 지난 3월 교과부에 낸 경제·사회·역사 교과서 수정안 가운데 국사 39건, 근현대사 138건의 일부 내용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대한상의의 역사교과서 수정안을 보면, 고교 국사 교과서 331쪽에 기술된 “1990년대에 들어 영화 산업은 미국 할리우드 대자본의 물량 공세에 맞서 한국적 특성이 담긴 영화를 제작하여 …”라는 부분에서 “할리우드 대자본의 물량공세 운운은 반미적 언급”이라며 삭제를 요구했다. 또 금성출판사의 고교 근현대사 321쪽의 “정부는 한-미 경제협정을 체결해 미국의 경제 원조를 받았다”는 내용에 대해선 “미국 원조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며 “미국 원조는 국민들에게 일종의 생명줄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는 내용을 추가할 것을 요청했다.

이신철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공동운영위원장은 “미국은 고마운 나라, 우방이라는 점을 알리려고 할리우드의 물량 공세라는 사실 그 자체도 불편해하며 빼라고 하는 등 노골적으로 친미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대한상의는 “1910년에서 1918년에 걸쳐 실시된 토지조사사업의 목적은 토지약탈과 식량수탈에 있었다”(천재교육 고교 근현대사 166쪽)는 부분은 “토지조사 사업의 목적이 근대적 토지소유 제도의 확립이었다”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유신헌법은 긴급조치라는 초법적인 권리를 부여 …”(두산출판사 고교 근현대사 134쪽)라는 부분에서 ‘초법적인’이라는 말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으며, “우리 민족은 자주독립 국가를 수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음에도 …”라는 내용을 두고서는 “자주독립 국가 수립 능력을 가졌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식민통치를 좀더 편하게 하려고 토지조사 사업을 했다는 것은 상식이며 ‘긴급조치’가 헌법의 권리를 좌지우지했는데 이게 초법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반박했다. 윤종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이달 말까지 학계 검수 등을 거쳐 대한상의의 수정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한 뒤 다음달 학술대회를 여는 등 왜곡된 역사 인식의 심각성을 알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상의의 교과서 수정안을 검토한 역사교육연대 등은 “역사를 친미·친일 중심의 시각으로 해석하는 등 편향적인데다, 객관적인 사실마저 부정하고 있다”며 “일제 강점기에 대한 반민족적 시각이 고스란히 담긴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와 맥을 같이하는 등 역사 인식이 우려할 만한 수준이었다”고 지적했다. <대안교과서 …>는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주축이 된 교과서포럼이 펴낸 책이다.

김도연 교과부 장관은 지난 14일 “역사 교과서가 다소 좌향좌돼 있다”며 “이미 교과부 차원에서 역사 교과서에 대한 검토를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소연 정민영 기자 dand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