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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박종우 선수의 독도 세리머니를 올림픽 무대에서 정치적 행위를 금지하는 IOC가 진상조사를 벌이게 되면서 아쉽게도 박종우 선수는 축구 동메달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IOC는 박종우 선수가 영국 웨일스 카디프의 밀레니엄 경기장에서 열린 일본과의 3-4위전이 끝난 뒤 관중석에서 전달 받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그라운드를 뛰어다닌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이에 누리꾼들은 박종우 선수의 '독도는 우리 땅' 세리머니에 대한 찬반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박종우 선수의 '독도는 우리 땅' 세리머니를 찬성하시는 분들은 '당연히 우리 땅인 것을 가지고 세리머니를 펼친 것이 무슨 대수인가'라는 반응을 보였고, 반대하시는 분들은 '이렇게 독도를 영토분쟁화 시켜서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가려는 것이 일본의 속셈이다'라며 박종우 선수의 세리머니가 경솔했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오늘은 당연히 우리 땅이며, 앞으로도 우리 땅인 '독도'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합니다.

 

 

독도가 우리 땅인 이유

 

독도연구소

 

일본 문헌에는 독도가 17C에 처음 등장합니다. 우리나라는 독도가 보이는 우산국(울릉도)이 6C에 처음 등장하고, 우산도(독도)가 나오는 것은 15C입니다. 이것은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독도를 발견한 시점이 200-900년 정도가 앞선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일본은 17c 독도 영유권 확립을 주장하면서, 도토리현 상인들이 일본이 독도와 왕래하며 '도해면허'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도해면허는 울릉도, 독도가 유일(외국에 보낼 때 허가해주는 면허, 지금으로 따지면 여권)하고, 상인들은 주인선(외국에 보내는 무역선)을 타고 이동했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독도가 일본 영토가 아닌 외국으로 인식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1693년 조선어민과 일본어민 사이에 충돌이 일어납니다. 일본은 안용복, 박어둔을 일본으로 연행(안용복 사건)합니다. 이에 조선과 협상을 하는데 1696년 일본 자국민의 울릉도 도해 금지령을 발표했지만, '독도로의 도해는 금지하지 않았다'를 가지고 독도가 일본의 영토였음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단락적인 이야기로, 에도 막부는 도토리 영주에게 독도에 대해 묻자 울릉도와 독도(울릉도에 속하는 섬이라고 생각)를 조선의 영토라고 생각한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이는 오히려 독도가 적어도 에도 막부 부터 조선의 영토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1900년에 대한민국 칙령 41호 '울릉도를 울도로 고치고 도감을 군수로 한다'에서 '독도'를 가리키는 명칭이 없고, 주변의 다른 섬만을 조선에서 영토로 생각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하지만 이 칙령에는 죽도(울릉도 2km 거리에 있는 섬)와 석도라는 명칭이 나오는데, 일본의 주장에 따르면 석도가 간음도라고 합니다. 먼저, 1880년대 우산도(독도)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독도를 '돌섬'으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우산도(독도)를 '석도'로 명칭을 고쳤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일본의 주장대로 울릉도 주위에 간음도라는 다른 섬이 있긴 하지만 간음도는 다른 이름이 있었기 때문에 석도라고 부를 이유가 없습니다. 따라서 석도는 독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05년 2월 일본은 독도를 시마네현으로 편입한 것을 두고, 영유권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1870년과 1877년 이미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의 부속이고, 일본땅이 아니다'라고 하는 공문서를 남겼기 때문에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는 것을 자백하는 꼴입니다. 또한 이 당시에도 일본의 일방적인 독도 편입을 문제 삼아 조선은 이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일본은 '러스크 서한'이 가장 핵심적인 문건으로 보고 '국제법상 독도는 일본땅이다' 라는 주장을 합니다. 이 '러스크 서한'은 1945년 이후 연합군과 일본이 평화조약을 만드는 과정의 것으로, 일본이 미국에 로비를 벌였을 뿐 아니라 6·25 전쟁 중 일본을 완전히 장악한 미국이 독도를 일본에 귀속시키는 것이 유리했기에 나온 문건입니다.

무엇보다 '러스크 서한'은 연합국(11개국) 전체가 만장일치가 돼야 인정될 수 있는 문건이었지만 영국, 호주, 뉴질랜드의 강력한 저항으로 한국에만 통보된 것으로 그쳤습니다. 따라서 '러스크 서한'은 정당성이 없고 무효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샌프란시스코 초안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달래스는 1954년 문서를 남겨 '러스크 서한'은 미국만의 견해라고 폄하했습니다. 또한 미국을 제외한 모든 연합국은 독도는 한국영토라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과정들을 볼 때 '러스크 서한'은 무효이며, 국제법상으로도 독도는 한국의 영토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독도,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독도연구소장인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독도를 국제 분쟁지역으로 만들지 않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현재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므로 수년간 현상을 유지한다면 시효취득 문제로 일본의 바람과는 달리 독도는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영토가 되어 일본이 더이상 시비를 걸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일본은 국제분쟁지역화를 통해 국제사법재판소로 회부되어 독도를 국제적으로 분쟁화 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떳떳하니 국제사법재판소로 회부하여 논쟁을 끝내자는 분도 계십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논리를 부수는 결과를 낳습니다. 우리나라는 독도가 역사적으로 고유영토임을 주장합니다. 일본이 원하는데로 국제사법재판소로 회부되면 이 논리가 치명적으로 손상을 받습니다. 우리 고유영토인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재판소에 맡기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국제사법재판소로 회부되면 국제사법재판소가 판결을 내리는 2-10년 동안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하던 독도에서 군, 경찰, 주민들 모두가 철수해야합니다. 분쟁지역에서 한 국가가 일방적으로 영토를 지배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독도문제가 국제사법재판소로 가게 되는 경우는 크게 2가지인데 하나는 국지적인 분쟁이 일어나서 안보리이사국이 직접적으로 국제사법재판소로 넘기는 경우와 다른 하나는 세계 여론이 일본에게 아주 유리하게 돌아갈 경우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빌미를 제공하지 않고 독도가 우리나라 땅임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입니다. 또한 군을 독도에 배치시키는 대신 필요하다면 울릉도에 배치시키고 독도에서는 경찰만을 배치시키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것입니다.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로 가지 말자

 

박종우 선수의 플레이를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밤을 지새우고 마음 졸이며 응원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숙적이라 불리는 일본을 상대로 완승을 거둬서 더할나위 없이 기뻤습니다.

 

무엇보다 박종우 선수의 '독도는 우리 땅' 세리머니가 그의 애국심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임을 당연히 믿고 신뢰하고 있습니다. 우리 땅을 우리 땅이라 하지 못하는 설움을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로 가지 말았으면 합니다. 조금만 지혜롭게 대처한다면 자연스레 우리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전개될 것입니다.

 

런던올림픽 한국과 일본의 3-4위전에서 우리가 두 골을 넣고 후반 종료 휘슬을 기다리며 끝나기 만을 기다렸듯이, 독도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면 쉽게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립시다.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PS. 이명박 대통령님. 제발 자제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