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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 글은 <한 시간 후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 편, 2004)에 게재된 방학진의 '이랬던 조선일보가 1 - 친일편'을 발췌, 정리한 것이다.


<조선일보>, 3.1 운동의 사생아


방학진(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3.1만세운동의 위력을 실감한 일본은 식민지 조선의 통치가 기존의 위압적인 방식으로는 효과적이지 않다고 판단한다. 이른바 무단통치를 문화통치로 대전환하여, 헌병경찰제를 보통경찰제로, 무관 총독제를 문무관 총독제로 전환한다. 이후 조선 총독으로 새로 부임한 총독 사이토(齊藤實)는 '문화의 발달과 민력(民力)의 충실'을 내걸고 본격적인 문화통치를 실시하는데, 조선인 관리의 임용 범위를 넓히는 한편 "언론, 출판, 집회 등에 대하여서는 상당한 고려를 두어 민의 창달에 기할 것"을 천명한다. 이 결과 총독부 정책을 홍보하던 기관지인 매일신보 등이 독점하던 신문시장에 민간지가 출현하게 된다. 곧, 조선일보, 동아일보, 시사신문의 창간이다. '실업신문'을 표방한 조선일보는 친일단체 대정실업친목회의 조진태(사장) - 예종석(발행인) 체제로 출발했다.

 동아일보가 창간부터 현재까지 김성수 가계를 중심으로 한 차례도 경영권을 상실한 적이 없는 데 반해 조선일보는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게 된다.

 조선일보의 경영권 변화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920. 3~1921. 4   친일단체 대정실업친목회
 1921. 4~1924. 9   대표적 친일파 송병준
 1924. 9~1933. 1   민족진영 운동가 신석우
 1933. 1~1940. 8   서북 출신 광산업자 방응모

 동아일보의 경우 호남 재벌가인 김성수의 사업수완과 재력으로 말미암아 창간 초기부터 경영진의 주도권 변화가 없었는 데 반해, 조선일보는 처음부터 여러 가지 상반된 입장을 가진 인적 구성을 이룬다. 예를 들어 친일 성향의 경영진 아래 사회주의 또는 민족주의 성향의 기자들이 공존한다거나, 또는 친일과 반일 성향의 편집진들이 공존하는 식이었다. 때문에 이윤추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일관된 경영은 어려워졌다. 신석우 체제 말기에는 조선일보에 대한 경영권 다툼이 벌어져 급기야 같은 제호의 두 개의 조선일보가 나오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이러한 혼란을 '평정'한 이가 바로 방응모다.

 몰락해 가는 조선일보를 인수한 방응모는 "일등 가는 사람 찾아 일등 대우 해주라"며 당시 동아일보에 있던 이광수, 서춘, 주요한 등을 최고의 대우로 스카우트한다. 이에 대해 당시 자료는 이렇게 설명한다.

 동아일보 대 조선일보의 정면 충돌(<<삼천리>> 제7권 제7호/1935년 8월 1일)
 우리가 보기에 양 신문이 충돌할 위기는 과거에 3, 4차나 있었다. 첫째로 이광수, 서춘, 함상훈 등, 동아 중진이 조선에 이거하든 때다. 말하자면 인재쟁탈전이었다.

 그러면 방응모가 '인재'로 여기던 서춘과 주요한, 이광수는 누구인가.

 한때 동경유학 시절 2.8 독립선언에 참가하는 등 항일운동에 가담해 독립유공자로 추서됐던 서춘은 1996년 김희선, 박연서, 장응진, 정광조 등과 함께 친일행각이 들통나 건국 이후 처음으로 서훈이 박탈되는 불명예의 주인공이 되었다.

 시 '불놀이'로 유명한 주요한. 그의 창씨명 마쓰무라 고이치(松村紘一)의 고이치(紘一)가 일본의 조국 이념인 '팔굉일우'(八紘一宇)에서 따온 것임은 너무나 분명하다.

 방응모가 일등 인재의 대표격으로 조선일보 부사장으로 스카우트 해 온 이광수(창씨명: 香山光郞, 가야마 미쓰로)는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반 년 만에 병보석 석방된 이후 본격적인 친일행위에 나섰다. 대표적 친일문인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과 '내선일체의 실천을 위하여 일본정신을 깨닫고 황도를 따르자'는 황도학회 발기인 대표를 비롯, 임전대책협의회, 조선임전보국단, 대동아문학자대회, 조선문인보국회, 대화동맹, 조선언론보국회, 대의당 등 온갖 친일단체에 참여하여 황국신민화, 징병. 징용. 학병. 정신대 권고문 따위의 많은 글을 써 민족을 배반하는 행동을 했다. 그가 지은, 친일음악에 쓰인 가사는 그 양이 방대하고 노골적인 것이 특징이다.

 希望의 아츰

 이광수 작사
 홍난파(창씨명: 森川 潤, 모리가와 준) 작곡

 씩씩하게

 1. 밤이 새엇다 희망의 아츰 동(東)편-- 하늘에 솟는 햇발--은
     다들 받--으라 듬뿍 받아서 소리소리 높여서 만세(萬歲)불러라

 2. 이러 나거라 우리 임금의 분부--받자와 일억 일심(一億 一心)--히
    넓은 천(天)--지(地)엔 팔굉일우(八紘一宇)의 새--론--세계를 일욱하랴고

 3. 대륙(大陸) 이만리(二萬里) 대양(大洋) 십만리(十萬里) 대아(大亞)--세아(細亞)의 대공책국(大共策國)--의
     우리 일--장기(日章旗) 날리는 곧 이 자자손손(子子孫孫) 만대(萬代)의 복 누릴 국토(國土)

 방응모가 이처럼 '일등인재'를 모아 대변화를 이룬 조선일보는 이전에 비해 월등한 이윤과 경영 성과를 내기는 했지만 그 동안 그나마 어렴풋하게 유지해 오던 항일 논조는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때의 조선일보의 경향을 굳이 이야기하자면 '시류 영합'과 '상업지 지향'으로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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