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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문제는 복잡하다. 가장 도덕과 밀접한 학문이면서도 일찍이 마키아벨리는 도덕과 정치를 분리했고, 클라우제비츠는 정치를 국제관계와 연결지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교육,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정치는 전 분야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과 동시에 영향을 받고 있다. 현대의 대중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소위 지식인들은 지식인 나름의 언어를 만들어 대중들은 감히 접근할 수 없게 만들고, 대중들은 어려운 내용따위는 상관 없다는 식의 정치불감증으로 정치에 무관심해 있다. 나는 중재자 역할로서 정치 분야에서의 중요한 사람들을 소개하고 내 의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토머스 홉스, [리바이어선]  구약성서, 욥기에 등장하는 거대한 영생 동물의 이름이고 리바이어선을 교회 권력으로부터 해방된 국가에 비유했다.
 
 자연을 전쟁상태로 보고 즉, 원시의 인간들은 서로 전쟁이 끊이지 않았으므로 권리와 법이 생겨났고, 통일된 권력이 출현했다고 생각했다. 다시말하면, 유물론의 관점으로, 자연권 → 자연법 → 코먼웰스(리바이어선)로 이어지는 인위적으로 창출된 인간의 인격에 의해 통일된 군중을 코먼 웰스라고 부르며, 이것이 바로 '리바이어선'의 탄생이다. 하지만 홉스가 주장하는 주권의 절대성을 절대왕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홉스는 자기 보호 그 자체를 위협받을 경우에 신민이 주권자에게 '복종하지 않을 자유'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홉스가 반대하는 것과 관련해 근대의 종교적 자유주의와 통하는 측면도 지니고 있다. 

존 로크, [통치론]  홉스의 절대주의적 경향을 배격하며 이성에 의해 파악 되는 자연법을 자연주의적 '관용의 원리'로 귀결시키려 노력했다.

 로크는 원시의 자연은 이지적으로 자연법을 따라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자 하는 상태로 이해했다. 자연상태에서 정치사회를 만들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상급자가 없는 자연 상태에서는 전쟁 상태가 지속되고 전쟁상태가 종결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화폐가 불평등을 확대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로크는 '최고의 권력은 국민에게 남아 있다.'라고 주장했고 여기에서 로크는 위정자가 아니라 국민에게 주권이 있다고 명백하게 주장한다. 따라서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신임을 배신하고 공동체의 법을 짓밟은 국왕은 권위를 상실해 국왕에서 반역자로 전락한다. 국민은 이러한 반역자에게 저항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

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론] 주권은 전체 국민에게만 있는 것으로 의회 의원들이 대표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몽테스키외의 입헌군주제와 정면으로 대립했다.
 

 당시의 권력의 근거를 자연적 기원에서 찾는 것으로, 가족을 정치 사회의 원형으로 부권에서 유추한 것과 달리 루소는 사회계약론을 제시했다. 이 사회계약론은 공동의 힘을 모두 합쳐 각 구성원의 인격과 재산을 방어하고 보호하는 결합 형태를 발견해 낼 것과 그것을 통해 각 개인은 전체의 구성원에게 연결되지만 자기 자신에게만 복종하며 이전과 마찬가지로 자유일 것을 주장했다. 루소는 시민의 자유와 평등한 관계를 확복하는 데 철저한 국민 주권만이 불가결한 요건이라고 주장하며 주권 개념을 단순한 정치 제도의 원리 속에 제한하지 않고 인간의 도덕적 가치의 근원까지 고양시켰다.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 노동 운동에서 이론적인 지주의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현실적인 행동지침서가 되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 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길드와 장인의 사례를 들면서 생산 수단에 대한 관계가 서로 다른 것은 물론 사회적 노동 조직 속에서 수행하는 역할이나 사회적 부의 할당을 손에 넣는 방법과 양 또한 다르다고 주장했다. 부르주아는 세계 시장을 배경으로 한 공업과 상업, 교통의 발전과 더불어 자본을 증가시키며 근대의 의회제 국가에서 독점적으로 정치적 지배력을 쟁취했다고 주장했다.

현 MB정권, 한나라당, 민주당,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정치에 있어서 자유를 갈망하는 근대의 시민들은 귀족과의 싸움이었고, 현대의 시민들은 귀족을 자처하는 자본가들과의 싸움이 되어버렸다. 근대의 시민들은 귀족으로부터의 자유를 얻기 위해 혁명을 일으켰고 마침내 민주주의라는 값진 권리를 얻었다. 현대에서는 값지게 얻은 민주주의는 헛된 사치가 되어 버렸고 자본가의, 자본가에 의한, 자본가를 위한 정치가 되어버렸다. 자본가들은 자본을 이용하여 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우민화를 하기 위하여 언론을 조작하고, 깨어있는 사람들을 왜곡하여 시민들을 호도하고, 정치자체를 더럽히고, 형형색색 포장한 미사여구로 시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비교적 가장 근접한 일제강점기, 군사독재, 민주화의 과정을 차례로 보면, 일제강점기 시대의 친일파, 군사독재 시대의 친군사독재, 민주화에서는 친자본가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모든 것을 독점하고 있다. 사주 방모씨의 ㅈ신문, 사주 김모씨의 ㄷ신문이 그 대표적이고, 그것도 모자라 한 때는 이완용의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반환청구 소송을 통해 그 부도덕함을 광고한 적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자본가들 즉 기득권들은 권력의 하수인이었거나, 현재 하수인인 부류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고려할 때 친일파, 친독재, 친자본가가 권력의 핵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현 MB정권이 그렇거니와 그 대표적인 정당이 한나라당이다. 이런 체제에서 국가 발전을 도모하고 이타적인 보수 운운하는 것은 이치에도 합당하지 않거니와 사리사욕 채우기 바쁜 빌붙기 정치의 대가들의 입밖에서 나온다는 것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은 반성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이들의 반성이 있고 보수를 하겠다고 한다면 나는 그것에 적극 동참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과오는 없고 자신의 업적들이 위대하다고 말한다. 교과서 편찬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역사를 바꾸면서까지 자신들의 부끄러운 업적들이 미화되고 찬양받기를 원하는 것은 과욕의 끝을 달리는 것이다. 이것은 한나라당의 문제만으로 그치지 않고 진보세력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민주당은 어설픈 한나라당이다. 북한과의 외교상의 방법에서의 차이만을 보일 뿐, 정책노선과 외교정책에 있어 한나라당과 크게 구별되는 것이 없다. 서구기준으로 좌파는 친노동 반시장이지만, 친노동에 있어서는 미지근한 수준이고 반시장에서는 오히려 시장을 옹호하고 있다. 굵직하게 볼 때, 한나라당과의 큰 차이는 없다. 
한나라당은 역사 속에 깊이 있는 반성을 통해 사리사욕이 아닌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표하는 진정한 보수를 표방하여야 한다.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차별되는 나름의 색깔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에 있어서 권력은 시민으로부터의 이양이다. 앞서 홉스, 로크, 루소가 주장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모든 권력은 시민 개개인의 권력을 사회의 안정을 위해 이양한 것임을 MB정권과 각 정당은 되새길 필요가 있다. 현재 MB정권이 추구하는 신자유주의는 문제점이 많다. 신자유주의란,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것으로써 최대화, 신속화를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은 경제성의 논리로써 인간존엄성이나 가치를 반영하지 않는다. 우리가 MB정권에게 이양한 권력은 개인의 사적인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하고 모두에게 필요한 일에 쓰여져야 하며 국민의 복지와 생활의 질을 개선시킬 수 있는 일에 쓰여져야 한다. 이것이 경쟁이나 외적인 것에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세우고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국민의 삶의 질이나 여건을 고려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 맥락을 같이 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는 돈 많은 이들 즉, 자본가들을 위한 체제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세계를 용납하지 않 민주주의를 달가워 하지 않는다. 따라서 경제시장을 국가 통제에서 벗어나고자 하고 시장이 민주주의 체제에서 벗어나야만 발전한다는 것이 사실인 것 처럼 왜곡하고 있다. 자본가들에 의한 사회체제는 그들만의 세상인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정치체제가 시장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해야하는 가장 큰 이유인 것이다. 다시말하면, 이러한 시장주의를 막고 시장에서의 이익을 국가의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분배하며 선순환의 역할을 해야하는 것이 바로 정치체제인 것이다. 

 MB정권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끝은 항상 대공황이기 때문이다. 이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그 대안으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예술분야에서 먼저 시도되었다가 지금은 한 철학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을 탈피하여 각 개인을 존중하고, 권위에 반대하며, 기본을 두지 않고,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을 존중하며, 개인을 벗어나 연대의식을 갖는 것을 말한다. 탈자아, 환경, 관계를 생각하며 함께 이루는 공동체를 통해 소외와 차별을 없애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1세계, 자본가, 백인, 남성만을 대변하던 모더니즘에서 벗어나 제 3세계, 노동자, 유색인, 여성 장애인, 외국인을 포함한 모두가 주인공인 것을 말한다. 작은 단위의 공동체도 인정하며 다수결의 소수자도 인정하고 최대화, 신속화가 아닌 사람 중심의 개개인을 위한 것이다. 거대 자본권력에 의한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개인의 자유가 가지는 가치가 다시금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로크는 '최고의 권력은 국민에게 남아 있다.' 라고 주장했고 여기에서 로크는 위정자가 아니라 국민에게 주권이 있다고 명백하게 주장한다. 따라서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신임을 배신하고 공동체의 법을 짓밟은 국왕은 권위를 상실해 국왕에서 반역자로 전락한다. 국민은 이러한 반역자에게 저항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