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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전자책 시장을 알려주마


2011.10.19. 수요일

블루칼라


다들 알겠지만 최근 스마트 기기의 확산은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바꿔놓을 정도로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줬어. 이제 우린 손 안에서 인터넷, 게임, 동영상과 음악감상은 물론이고 주식 거래에 버스 노선까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


 

그런데, 나만 그런 걸까뭔가 빠진 거 같단 말이야. 스마트 기기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편리함과 즐거움을 놓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내 생각에 한국인들은 스마트 기기의 가장 매력적인 활용법을 놓치고 있다고.

스마트 기기를 갖고 있는 딴지스라면 한 번 생각해봐. 자신이 스마트 기기를 갖고 쪼물딱 거리는 시간 대부분은 사실 시간을 떼우고있는 것 뿐이지 않아?

누군가가 그랬지. 단지 시간을 떼우기 위해 하는 모든 행위는 죄악이라고. 뭐 그렇게 까칠한 기준을 들이댈 필요까진 없겠지만 우리는 스마트 기기를 말 그대로 시간을 죽이는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야. 언제까지 우리가 지하철 안에서 앵그리 버드나 하면서 새총만 쏴야 할까?

 



그런 점에서 스마트 기기의 가장 생산적인 활용법은 e-Book, 바로 전자책이 아닐까 싶어. 나 역시 태블릿과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가장 필요로 했던 용도는 전자책을 보는 거였다고. 그런데 아직까지 우리나라 출판시장에서 전자책은 애물단지로 취급 당하고 있어. 덕분에 독자들은 보고 싶은 책이 있어도 대부분 전자책으로는 구할 수 없는 상태지.

오늘은 이 문제많은 전자책 시장의 현상황에 대해 좀 디벼보고 내가 나름대로 생각해 본 타개책을 얘기해 볼게.


관심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국내 전자책 시장은 기존 출판시장의 문제점과 뒤엉켜서 제대로 활성화될 기미가 안 보이고 있어.


대여점용 판타지나 무협 소설 같은 것들만 불법으로 텍스트 파일로 돌아다니고 있을 뿐,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신간 소설이나 자기계발서, 인문학 서적, 잡지, 그리고 위대하신 블루칼라님이 쓴 [신 벗어던지기] 같은 명작 출판물은 전자책으로 출간되지 않고 있다고.

전자책은 종이책에 비해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진 매체야. 인쇄과정이 필요없는데다가 유통단계를 획기적으로 줄여서 책값을 낮출 수 있고 종이책을 만들기 위한 엄청난 수요의 나무 벌채와 환경오염도 막을 수 있지. 더구나 종이책으로는 불가능한 쌍방향 소통(interactive)이 가능한 것 등등, 전자책은 분명 차세대 출판시장의 주류가 될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매체야.

전자책 초창기엔 각 업체들이 자기들만의 규격과 단말기를 만들어서 그걸 업계 표준으로 삼으려 하다보니 대중화에 한계가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 별도의 전자책 단말기가 없더라도 스마트 폰이나 태블릿 기기로 얼마든지 전자책을 볼 수 있지. 스마트 기기를 갖고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이 잠재적인 전자책 소비자들이기도 하단 말이야.


물론 전자책에는 단점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장점이 더 많은 매체인 건 분명해. 앞으로의 출판시장은 전자책이 주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걸 독자나 출판 관계자 모두 인정하고 있다고. 실제로 미국은 이미 전자책 판매량이 종이책 판매량을 훌쩍 넘어섰을 정도라는데 왜 우리나라에선 전자책이 활성화되지 못 하고 있는 걸까?

 


거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기존 출판 시장의 이해 당사자들이 벌이는 밥그릇 싸움 때문이야. 전자책이 활성화될 경우 기존의 출판 시장은 송두리째 개편될 수밖에 없거든. 우리나라 출판시장은 굉장히 낙후되고 많은 문제점이 산적해 있지만 이 글에선 책값의 분배 방식을 기준으로 접근해 볼게.

현재 종이책 시장의 이해 당사자는 크게 작가와 출판사, ,오프라인 대형 서점이라고 볼 수 있어. 그리고 작가와 출판사, 대형 서점이 책값을 나눠갖는 비율은 일반적으로 145 정도야. 요즘은 단행본 가격이 보통 만이천 원 이상이지만 계산하기 편하게 책값을 만 원이라고 가정해보자.

출판사는 정가 만 원짜리 책을 대형 서점에 납품할 때 오천 원 정도를 받아. 그 오천 원이 다 출판사 몫이냐면 그렇진 않지. 일단 작가에게 천 원(정가의 10% 안팎) 정도를 인세로 지급해야 해.

인쇄비는 권당 얼마라고 계산하기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찍는 초판 물량 2~3천 부를 기준으로 할 때 인쇄비와 교정, 편집, 책 표지와 내부 디자인, 사무실 임대 비용과 잡다한 인건비를 계산하면 출판사는 남는 게 거의 없어.

문제는 우리나라 출판시장에선 초판 2~3천부도 다 안 팔려 창고에서 썩어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거지. 독서량이 적기로 유명한 대한민국에서 글을 써서 먹고 산다는 건 미션 임파서블이란 말씀.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책 한 권 쓴 작가가 손에 쥐는 돈은 고작 2백만 원 안팎이야.




수만 부 이상 책이 팔리지 않는 다음엔 작가나 출판사나 손가락 빨 수밖에 없는 게 현재의 출판 시장이라고. 대형서점은 이렇게 납품받은 책을 보통 정가에서 10% 할인해서 9천 원에 판매해. 따로 마일리지를 10% 쌓아준다고 해도 책 한 권당 3천 원 이상의 마진을 남기는 거지.

책을 만드는 일에 대한 기여도를 따지면 작가 > 출판사 > 대형 서점 이지만, 이익을 얻는 순서로 보자면 대형 서점 > 출판사> 작가 라는 거야.

 *동네 소형 서점들은 대형서점들보다 훨씬 비싼 값에 책을 공급받지만 그 문제는 전자책 유통과는 동떨어진 얘기니까 여기선 언급하지 않겠음.

그런데 출판 시장이 전자책으로 개편되면 기존의 이익 분배 방식은 전혀 다른 형태로 재편되게 돼. 일단 출판사와 대형 서점의 영향력이 대폭 줄어들게 되지. 예를 들어 미국 최대의 전자책 유통사인 아마존의 경우 작가가 직접 자신의 글을 온라인에 띄워서 독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을 제공하고 있어. KDP(Kindle Direct Publishing)라고 불리는 이 시스템은 작가가 글을 써서 그걸 아마존 서버에 올리면 독자가 직접 결제하고 전자책 형태로 구입하는 거지.




이런 걸 셀프 퍼블리싱(Self-Publishing)이라고 하는데 아마존은 KDP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독자가 결제한 금액의 30%를 수수료로 받아가. 남은 70%가 작가의 몫이지.


물론 전자책이 종이책보다는 저렴하다고 하지만 10% 안팎의 인세를 받던 작가들에겐 굉장히 좋은 조건이 아닐 수 없어. (KDP 서비스로 책을 출간하고 싶은 작가나 지망생이 있다면 http://www.talk-with-hani.com/archives/1223 를 참조)

기존 종이책 출판시장에선 [작가 출판사(교정, 편집, 북 디자인, 마케팅 등등) 서점] 이라는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했지만 전자책 시장이 활성화될 경우 그 과정이 대폭 줄어든단 말이야. 맘만 먹으면 작가와 독자가 거의 직접 연결될 수 있을 정도라고.

이 말은 그간 출판시장에서 어깨에 힘 좀 주던 출판사와 대형서점의 역할이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기도 해.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출판사나 대형 서점들 상당수는 전자책이 활성화되는 걸 그다지 반기지 않고 있어. 조금씩 전자책 유통을 준비하고 있긴 하지만 서로 눈치만 보면서 시장 상황을 보고 있지.

지금도 사실 전자책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은 꽤 많아.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회사들부터 yes24, 알라딘 등등의 온라인 대형서점, 그리고 KTSK 같은 통신사 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신세계 같은 대기업까지 전자책 시장에 뛰어들고 있지.

그런데 한국의 전자책 시장은 아직도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막막한 상태야.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출판시장의 주역이 되기 위해 싸울 뿐, 진짜 출판시장의 주역이 누군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지.

한 번 생각해봐. 출판시장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바로 작가와 독자야. 출판사와 서점, 그리고 전자책 유통 회사는 작가와 독자를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이지 그들 자신이 출판 시장의 주인공은 아니라고.

그런데 종이책 시장에서도 그랬지만 우리나라 전자책 시장에서 가장 무시당하고 있는 게 바로 작가와 독자야. 이 마인드를 바꾸지 않는다면 전자책 시장의 활성화는 기대할 수 없단 말이야.




그럼 작가와 독자들이 가장 원하는게 뭘까? 까놓고 말해 이야. 작가는 피땀흘린 창작활동에 대한 보상을 얻기 위해 더 높은 인세를 바라고 독자는 저렴한 가격에 책을 보고 싶어한다고. 물론 다른 욕구들도 있겠지만 작가에겐 정당한 대우를, 독자들에겐 저렴한 가격에 책을 공급하는 게 출판시장 활성화의 최우선 과제가 아닐까?

흔히 사람들은 전자책이라고 하면 종이책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유통돼야 한다고들 생각해. 종이로 인쇄하는 과정이 필요없고 전국으로 유통하는 물류비용이 들지 않으니까 지금 책값의 절반 이하로 판매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전자책을 구입해본 사람들은 알 거야. 아주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이 아닌 다음에야 요즘 나오는 신간들은 전자책 가격이 생각보다 그렇게 저렴하지 않아. 출간된지 오래된 [태백산맥] 같은 소설은 종이책 절반값에 전자책이 판매되고 있지만 코엘류의 신간인 [브리다]70% 가격에 판매되고 있지.

기존 출판시장에서 종이책을 만들고 유통하는 비용은 그리 크지 않아. 종이책 인쇄와 물류비용은 책값의 20%도 안 되거든. 그 비용을 빼봤자 기존 방식대로 전자책을 유통하면 가격을 30% 이상 낮추기 어렵단 말이야.

, 그럼 어떡해야 할까? 이 상황에서 출판시장의 주역인 작가와 독자에게 더 높은 인세와 더 저렴한 책값을 선사하려면?

답은 하나야. 기존과는 전혀 다른, 전자책만의 유통 방식을 만들어야 해. 앞에서 말했듯이 전자책이란 건 (아마존이 KDP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듯이) 맘만 먹으면 작가와 독자가 직접 연결될 수 있어. 당연히 기존 출판사와 대형서점의 영향력은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지.


그런데 종이책 시장에서처럼 자신들의 마진을 똑같이 챙기려고 덤벼들면 그건 욕심이야. 그 탐욕을 상당부분 내려놓지 않는다면 조만간 국내 출판사와 대형서점, 전자책 유통 회사들은 외국 업체에 박살날 게 분명해.

내가 풀어둔 세작들의 정보에 의하면 아마존은 이미 한국 출판 시장에 뛰어들 태세를 갖추고 물밑 작업에 들어갔어. 몇 년 전엔 그러다 한 차례 물러났지만 이번엔 확실히 들어올 거란 정보가 있다고. 미국과 전세계 전자책 시장을 석권하다시피하고 있는 출판계의 공룡 아마존이 국내에 진출하면 상황 끝이지. 구멍가게 수준인 국내 업체들은 말 그대로 박살나는 거야.

막말로 작가들 사이에선 그런 이야기도 해. 국내 기업들 마인드가 하도 개판이니까 차라리 아마존이나 애플이 들어와서 제대로 한국 출판 시장을 개편해줬으면 좋겠다는 얘기. 씨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독자들 쌈짓돈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건 열 받잖아?


그러니까 아마존이나 애플 색퀴들이 한국 출판 시장 땅따먹기 하기 전에 해결책을 찾아보잔 말이야. 세계 30개국을 조사해봤더니 한국인들이 인쇄매체를 접하는 시간은 주당 3.1시간으로 당당히 꼴찌래.책을 사서 읽는 게 아니라 잡지든 신문이든 모든 형태의 인쇄매체를 접하는 시간이 고작 주당 3.1시간이라고. 우리보다 개인 소득이 낮은 인도의 경우만 해도 주당 10.7시간인데 많이 쪽팔린 수치지.




그리고 2009년 우리나라 직장인 한 사람이 한 해 동안 읽은 책은 평균 11.8권이야. 한 달에 한 권 꼴인데 비슷한 경제력을 가진 다른 나라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독서량이지. 한국인들의 노동 강도가 살인적이라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도 일리있는 얘기긴 해.


그런데 난 쉽고 저렴하게 어디서나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한국인의 독서량은 분명히 올라갈 거라고 생각하거든? 실제로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2010년엔 2009년과 비교해 직장인들의 평균 독서량이 3.7권 늘어나서 15.5권으로 치솟았어. 손쉽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여건만 조성된다면 그 수치는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야.

지금까지 지루하게 우리나라 전자책 시장의 문제를 살펴봤는데, 그래서 내가 생각해 본 전자책 활성화의 첫 단계는 대여 시스템이야. 요즘 그나마 각 구청이나 지자체들이 공공도서관을 많이 짓고 있긴 하지만 전국에 있는 공공도서관 숫자는 고작 700여 개 정도야.


국민 7만 명에 도서관 하나 꼴이니까 책 한 권 보려면 몇 주에서 몇 달씩 기다리는 게 다반사지. 거기다 책을 빌리고 반납하러 도서관까지 왔다갔다 하는 시간과 교통비를 생각해 봐. 도서관을 통한 책 대여는 전자책이 활성화되는 21세기엔 그다지 효율적인 독서 방식이 아니란 거지.

그러니까 도서관에서 전자책을 대여해준다면 독자들에겐 정말 반가운 일이 될 거야. 종이책이랑 달라서 전자책은 파일 형태니까 동시에 몇 명이 빌려가든 대여 순서를 기다릴 필요가 없고 달리는 지하철에서든 잠이 안 오는 심야의 이불 속이든 언제 어디서나 즉시 책을 빌려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공공도서관에서의 전자책 대여엔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어. 공공도서관이 수량 제한없이 무제한으로 전자책 대여 서비스를 하면 실제 도서 판매량은 바닥까지 떨어져버린다는 거야. 종이책은 도서관에서 대여를 한다고 해도 책 판매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아. 앞서 말한 도서관 대여의 불편함 때문에 실제로 책을 사서 볼 사람들은 사서 보거든.히려 도서관 숫자만큼 책을 구입해주면 작가와 출판사엔 이득인 면이 있지.

하지만 생각해봐. 보고 싶은 책을 도서관에 빌리러 가고 반납하는 수고를 거치지 않고 손쉽게 어디서나 공짜로 볼 수 있다면 굳이 일부러 책을 돈 주고 구입할 필요성을 느낄까? 2주 정도의 대여기간이라는 한계가 있다고 해도 독자들 대다수는 책을 사는데 지갑을 열지 않을 걸.

물론 지금도 공공도서관이나 학교 도서관 중에는 전자책 대여 서비스를 실시하는 곳이 있어. 한 번 빌린 뒤엔 2주 후에 자동으로 소멸되는 파일로 전자책을 대여해주는 거지. 그런데 이용해 보면 알겠지만 자신이 보고 싶은 책 대다수는 빌리고 싶어도 전자책으로 제공되지 않을 거야.




그건 작가나 출판사가 전자책을 내서 도서관에서 대여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야. 도서관을 통한 무료 전자책 대여 서비스가 활성화되면 출판시장의 주역인 작가들은 말 그대로 길바닥에 나앉아야 한다고. 공짜가 아무리 좋다지만 그래도 출판시장의 주역인 작가들을 굶어죽게 만들면 안 되잖아.

그래서 발빠른 전자책 업체들 중엔 전자책 유료 대여 서비스를 준비중인 곳들이 있어. 하지만 대여료를 작가, 출판사, 대여서비스 업체가 어떤 비율로 나눌지에 대한 합의와 관련 법률이 미비해서 아직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지 않지. 난 이 부분에서 독자들을 위한 획기적으로 저렴한 대여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고 생각해.


그러기 위해선 정부 예산으로 공기업 형태의 전자책 대여 업체를 설립해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지. 어지간하면 민간 기업들에게 맡기겠지만 지금 출판계는 너무 많은 회사들이 자기 탐욕만 챙기겠다고 싸우면서 정작 출판 시장의 주역인 작가와 독자가 무시당하고 있기 때문이야.

공공 도서관이 돈을 받고 책을 빌려준다고 하면 국민 정서에 반발감을 안겨줄 수 있으니까 도서관은 직접 가서 종이책을 보는 장소로 국한시키고 온라인 유료 전자책 대여 사업은 공기업이 맡는 거지. 막말로 서울에 도서관 하나 짓는 비용이면 전국적인 전자책 대여 시스템을 구축하고도 남는다고.

그럼 공기업이 나설 경우 기존에 전자책 출판에 뛰어든 업체들은 다 죽으란 말이냐?


그건 아니야.

난 출판 시장의 또다른 주역인 독자들을 위해 전자책 가격을 대폭 낮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방법으로 전자책을 두 종류로 유통했으면 해. 종이책도 양장본은 비싸지만 재생지를 사용한 보급판(페이퍼 북)은 싸게 판매하잖아. 그러니까 전자책도 대여용 전자책과 판매용 전자책을 따로 만들어서 판매하는 거지.

현재 국내에 판매되는 전자책들은 대부분 종이책 형태와 크게 차이가 없지만 외국은 이미 전자책이라는 매체에 걸맞게 굉장히 다양한 요소를 전자책에 불어넣고 있어. 예를 들어 자동차 잡지를 전자책으로 만든다면 기사에 포함된 사진을 클릭해서 자동차가 질주하는 동영상을 볼 수 있다거나 인테리어 각 부위를 크로즈업해서 볼 수 있는 등 재미있는 요소들을 도입하고 있지.


소설이라면 챕터마다 그에 어울리는 배경음악을 삽입할 수도 있고 일종의 게임처럼 이야기의 분기점마다 독자가 선택한 방향으로 각각 다른 멀티엔딩을 도입할 수도 있어. 종이책처럼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인터랙티브 요소들이 도입되고 있다는 말이야. 그러니까 대여용 전자책은 텍스트만 보여지는 형태로 유통하고 판매용 전자책은 독자를 위한 각종 인터랙티브 요소를 첨가해서 소장가치를 높여 비싸게 판매하는 거야.

종이책 형태로 대여하는 전자책은 단행본 소설의 경우 한 권에 천 원 수준이면 적당하다고 봐. 천 원이면 독자들도 부담없이 책을 빌릴 수 있고 실제로 도서관을 오가며 들어가는 시간과 교통비를 생각하면 훨씬 저렴한 비용이니까.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한 달에 4천 원으로 어디서든 자기가 보고 싶은 책을 볼 수 있으니 그걸 아깝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걸?

전자책 대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공기업이든 회사든 그 천 원에서 30% 마진을 가져가면 운영비를 충당하고도 충분히 이윤이 남아. 각종 웹하드 업체들도 매일 수십 기가씩, 한 달이면 테라 단위로 야동 다운 받는 애들한테 한 달 이용료 만 원 밖에 안 받잖아?



여용 전자책은 텍스트 위주라 용량도 얼마 안 될 텐데 호스팅 비용도 얼마 안 들어. 거기서 떼 돈 벌겠다고 작가들 주머니 털어갈 생각하면 도둑놈이지.

실제로 음반시장에선 각 통신사가 mp3 다운로드 서비스 제공하면서 그 도둑질을 이미 하고 있지만 전자책 시장에서 그런 짓 했다간 외국 회사들한테 거덜날 각오해야 할 거야. 아마존이 작가한테 70% 인세를 챙겨주는 판국에 대기업들이 mp3 팔 때처럼 반 값 이상 땡겨먹는 건 자살행위지.

그럼 나머지 칠백 원을 출판사와 작가가 나눠 가지면 돼. 종이책과 비슷한 텍스트 위주의 대여용 전자책은 출판사 기여도가 상대적으로 줄어드니까 교정비와 편집비를 계산해서 출판사가 2~3백 원 갖고 나머지는 작가몫으로 돌리면 된다고 봐. (작가가 조금만 노력하면 대여용 전자책은 굳이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도 만들 수 있어)

보통 종이책 한 권 팔면 작가가 인세로 천 원 이상 벌 수 있었지만 내가 제안한 방법으로 대여용 전자책을 출간하면 작가한텐 4~5백 원 밖에 인세가 들어오지 않아. 하지만 종이책을 팔 때보다 훨씬 많은 수요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작가 입장에선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게 분명해. 책 값이 만 원을 훌쩍 넘을 땐 지갑 열기 힘들지만 천 원으로 책을 대여한다면 부담없이 빌릴 사람들 많단 말이야. 결과적으론 작가들도 자신의 책을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게 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출판사도 마찬가지야. 대여용 전자책에선 큰 이득을 보지 못 하더라도 실망할 필요 없어. 앞에서도 말했지만 전자책 시장에서 출판사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는 작가의 글에 각종 인터랙티브 요소를 집어넣는 편집 작업이야.


그건 작가가 하기 어려운 부분이고 출판사는 거기서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야해. 그렇게 만든 판매용 전자책이라면 독자들도 흔쾌히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소장하고 싶겠지. 물론 독자들의 관심사를 파악하고 그 때 그 때 필요한 서적들을 기획해서 작가를 섭외한 뒤 원고를 만드는 것도 좋은 편집자의 몫이야.

내 생각에 판매용 전자책의 적정가격은 현재 종이책의 절반 수준이야. 단행본 소설이라면 6천 원을 전자책 유통사와 출판사, 작가가 각각 1/3씩 나눠 가지면 충분하다고 봐. 각종 인터랙티브 요소가 가득한 판매용 전자책을 소장하는데 그 정도 가격이면 독자들도 아깝다는 생각들지 않고 지갑을 열 수 있을 거고 말이야.




물론 기존의 대형서점이나 출판사가 가져가던 몫보다는 줄어들어서 불만이겠지만 그건 배부른 소리야앞에서 내가 아마존의 KDP 서비스 얘기해줬지? 작가가 직접 온라인에 자기 글을 올리면 바로 독자가 결제해 구입하는 셀프 퍼블리싱 시스템.

아마존뿐만이 아니라 애플은 아이북스토어(ibookstore), 반스앤노블은 펍잇(Pubit), 그리고 외국의 다른 후발 업체들도 이런 셀프 퍼블리싱을 도입해서 작가들을 끌어들이고 있어. 왜냐하면 걔들은 컨텐츠 생산자인 작가가 전자책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야.


협박이 아니야. 이제 작가들은 자신의 책을 출판사나 대형서점을 거치지 않고도 얼마든지 독자들에게 판매할 수 있는 세상이 왔어. 우리나라에서도 조만간 그런 셀프 퍼블리싱이 확산될 거고 그렇게 되면 유명 작가들은 유능한 전자책 편집자를 고용해서 자신의 책을 디자인한 뒤 바로 독자들에게 판매하는 일이 흔해질 걸. 출판사나 대형 서점이 기존 종이책 시장처럼 생각하고 전자책 시장에 접근했다간 먹던 밥그릇도 뺏기게 될 테니 빨리 정신 차리고 대비하란 말이야.

안됐지만 전자책 시장에서 소형 서점은 내가 볼 때 거의 살아날 방법이 없어. 그건 대형 오프라인 서점들도 마찬가지야. 종이책 시장은 점차 줄어들 거고 대형 서점들은 좋은 작가를 발굴하고 좋은 책을 기획하는 출판사의 역할로 전환하거나 전자책 대여, 판매 업체로 전환해야겠지.

혹시 이 글을 읽는 관련 업계 사람들이 있다면 잘 생각해 봐. 작가에게 인세를 70%까지 보장해주는 아마존이랑 대결해서 한국 전자책 출판 시장을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것일지 말이야. 내가 볼 땐 전자책 대여 시장을 먼저 선점하는 업체가 한국의 아마존이 될 거라고 봐.


작가에겐 더 좋은 대우를, 독자에겐 더 저렴한 책값을 선사할 수 있는 업체가 아니면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깨달으라고. 서로 견제하기 바쁜 출판업체들끼리 미적거리다가 외국 자본에 시장을 통째로 내줄바엔 정부가 먼저 나서서 공기업 형태로 전자책 대여 시스템을 구축하길 부탁하고 싶다.


전 세계에 유래가 없는 시스템이 되겠지만 맨날 IT 강국 코리아라고 자랑하는 이 나라에서 한 번 도전해볼만하지 않냐?

문화는 컨텐츠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주역이야. 그걸 유통하는 대기업의 이익을 지켜주기 위해서 정부가 눈치를 본다면 그건 욕을 먹어야지. 전국에 700여 개의 공공도서관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도서관들에 소장된 장서는 한계가 있어.도서관 이용자가 보고 싶어하는 모든 책이 구비되어있진 않단 말이지.

현행법상 국내에서 출간되는 모든 도서는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에 한 권씩 의무적으로 납본하게 되어 있어. 국내에 출간된 모든 책을 볼 수 있는 도서관은 위에 말한 두 개의 도서관 뿐이란 말씀.

그런데 전자책 대여를 공기업이 맡게 된다면 국내 출간되는 모든 전자책을 한 권(사실 파일 하나)만 납본 받아도 전국민에게 대여할 수 있게 돼. 시중 서점이나 공공도서관에서 찾기 구하기 어려운 어떤 책이라고 해도 대여가 가능해진다는 말이야. 출판 시장의 주역인 독자에겐 굉장히 유익한 일이지 않겠어?

더구나 일반 종이책을 읽기 어려운 장애인들에겐 음성으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전자책의 보급과 대여가 굉장히 절실한 문제라고. 지금도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책이 소량 보급되고 있긴 하지만 전체 서적들 가운데 점자책으로 변환된 책의 종류는 극소수야. 이런 이유들만으로도 공기업이 전자책 대여에 나설 명분은 충분하지 않을까?

더구나 고사 상태에 빠진 한국 만화 시장도 가격만 적당히 조절한다면 전자책 대여 시스템으로 경쟁력을 다시 회복할 수 있다고 봐. 다들 21세기의 국가 경쟁력이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서 나온다고 말하잖아. 왜 한국에선 해리포터 같은 세계적인 문화 상품이 나오지 않느냐고 백날 한탄해도 소용없어. 한강 르네상스니 4대강이니 콘크리트 삽질할 돈은 있어도 문화에 투자하는 건 인색하니까 좋은 문화상품과 컨텐츠를 만들지 못 하는 거야.

중국은 14, 영어권(영어를 모국어로 쓰거나 공영어로 쓰는) 인구는 75천만, 스페인어권 4, 일본은 자국 인구만 12천만이 넘어. 그런데 한국어를 쓰는 사람은 북한을 포함해도 73백만 명 뿐이야.

 

모국어 인구
공식언어 인구
1    Chinese (1,000) 1    English (1,400)
2    English (350) 2    Chinese (1,000)
3    Spanish (250) 3    Hindi (700)
4    Hindi (200) 4    Spanish (280)
5    Arabic (150) 5    Russian (270)
6    Bengali (150) 6    French (220)
7    Russia (150) 7    Arabic (170)
8    Portuguese (135) 8    Portuguese (160)
9    Japanese (120) 9    Malay (160)
10    German (100) 10    Bengali (150)
11    French (70) 11    Japanese (120)
12    Panjabi (70) 12    German (100)
13    Javanese (65) 13    Urdu (85)
14    Bihari (65) 14    Italian (60)
15    Italian (60) 15    Korean (60)
16    Korean (60) 16    Vietnamese (60)
17    Telugu (55) 17    Persian (55)
18    Tamil (55) 18    Tagalog (50)
19    Marathi (50) 19    Thai (50)
20    Vietnamese (50) 20    Turkish (50)
언어별 사용인구(수치는 어림치)


영어로 글을 쓰는 작가는 75천 만 독자를 대상으로 책을 팔 수 있지만 한국 작가들은 고작 73백만 명이 사용하는 한국어로 컨텐츠를 만들어 가야해. 글로벌 시대에 이 좁은 시장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 언어로 만들어낸 컨텐츠를 지켜나가려면 모두가 이 악물고 빡세게 준비해야 한다고.

그러니 기업들이나 정부나 당장 눈 앞에 보이는 밥그릇 싸움만 하지 말고 작가와 독자들을 우선해서 파이를 키우길 정말, 정말 부탁한다. ?

http://www.ddanzi.com/news/3666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