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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의 규모는 노무현 정부에게 일종의 '아킬레스 건'이었다.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노무현 정부에서 비정규직은 나날이 늘어났다. 2002년 8월 통계청 공식 발표로 전체 임금 노동자의 27.4%였던 비정규직 규모는 2004년 37%까지 치솟았다가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이던 2007년 8월에도 35.9%나 됐다. 장기임시 노동자를 포함시킨 조사로는 노무현 정부 시절 800만을 넘겼다. 노동계는 이 때문에 노무현의 임기 내내 대선 후보 시절 그의 말과 행동을 공격했다.

2007년 이후 비정규직 비율은 꾸준히 감소세를 보였다. 통계청의 경제활동부가조사 결과 2007년 3월 36.7%를 기록했던 비정규직 규모는 2년 넘게 꾸준히 줄어들었다. 그러던 비정규직 규모가 지난 8월 통계에서 다시 늘어났다. 9월 취업자수는 1년 전에 비해 7만1000명이 늘어났는데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무려 30만9000명이 늘어났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비정규직 관련법도 있는데 비정규직 규모가 외려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경제위기 탓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는 복잡한 속사정이 그 안에 들어있다. 한 마디로, 일자리를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의 일자리 정책의 실체가 확인된 것이다. 또 이는 경제회복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 앞에 닥쳐올 일자리 재앙의 경고이기도 하다.

2007년 이후 감소하던 비정규직, 지난 1년 사이 5.7% 늘어

통계청이 지난 4일 내놓은 '2009년 8월 근로 형태별 및 비임금 근로 부가조사 결과'에서 주목할 것은 단연 비정규직의 증가였다. 전체 임금 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의 규모는 34.9%, 575만4000명이었다.

비정규직 비율은 지난 2007년부터 꾸준히 줄어들어 왔다. 2007년 전체 임금 노동자의 35.9%였던 비정규직은 2008년 3월에는 35.2%, 같은 해 8월에는 33.8%, 지난 3월에는 33.4%까지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비율 뿐 아니라 실제 숫자도 마찬가지로 감소했다.

그러나 지난 8월 조사에서는 3월에 비해 1.5%포인트, 1년 전에 비해서는 1.1%포인트 늘어났다. 비정규직 노동자 숫자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5.7%나 늘었는데 반해 정규직 노동자는 0.6%, 6만6000명 늘어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정규직 증가율은 최근 4년 동안 가장 낮았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정규직은 2007년 8월에 비해 4.7% 늘어나고 비정규직은 4.5%가 줄어들었었다.

▲ ⓒ프레시안

고용 형태별로 보면 기간제 근로자가 무려 45만 명이 늘었다. 시간제 근로자는 19만8000명이 늘어나 16.1%의 증가율을 보였다. 반면 반복갱신자는 줄어들었다. 2년 이상 고용 시 정규직 전환 의무를 정한 비정규직법이 시행된 지난 2007년부터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반복갱신자는 17만 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무려 54.4%가 감소했다.

비정규직 자체의 질도 하락…임금 7.3% 줄어

비정규직의 증가는 우니라나 전체 고용의 질의 하락을 의미한다. 저임금과 고용불안이 전제된 나쁜 일자리가 더 늘어나고 질 좋은 일자리는 줄어들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 나온 통계청의 조사결과를 보면, 단순히 질 낮은 일자리의 숫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자체의 절대적 질도 더 낮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에 비해 정규직 평균 임금은 높아졌는데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은 반대로 줄었다.

지난해 6~8월 정규직의 임금 평균은 212만7000원이었는데 올해는 220만1000원으로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3.5% 늘어났다. 같은 기간 비정규직의 임금은 지난해 129만6000원에서 올해 120만2000원으로, 1년 사이 9만4000원(-7.3%)이나 깍였다. 특히 기간제 근로자의 임금은 무려 12.0%나 감소했다.

당연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지난해 83만1000원에서 올해 99만9000원으로 더 벌어졌다.

비정규직의 임금 하락은 같은 비정규직 가운데도 상대적으로 임금이 더 낮은 일자리를 얻을 확률이 높은 여성과 중·고령층이 비정규직 증가세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여성은 지난해 8월에 비해 11.9%, 32만7000명이 늘어나 307만3000명이 됐다. 반면 남자 비정규직은 거꾸로 줄어들었다. 지난해에 비해 1만8000명이 줄어 0.7% 감소율을 보인 것. 숫자도 여성보다 100만 명 가량 작은 268만1000명이다.

▲ ⓒ프레시안

중·고령층에서 비정규직의 증가세도 도드라진다. 특히 60세가 넘는데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은 1년 사이 무려 21만2000명이 늘어 전체 비정규직 가운데 15.2%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60대 이상의 비율은 전체 비정규직의 12.2%였다. 1년 사이 3%포인트나 늘어난 것이다. 40~50대도 마찬가지다. 50대 비정규직은 전년 대비 9만5000명, 40대 비정규직은 7만4000명이 증가했다. 반면 20대는 지난해와 똑같고 30대는 지난해보다 8만3000명이 줄어들었다.

일자리 가운데 비정규직 비중만 점점 늘어나 정규직이 되기는 더 어려워지고, 그나마 비정규직으로 취직을 하더라도 예전보다 임금이 깎이고 있는 것은 현재 일자리 위기의 핵심이다.

비정규직 왜 늘어났나? "청년인턴·희망근로 등 정부 정책이 1차 원인"

이처럼 비정규직이 다시 늘어나게 된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정부 정책을 꼽았다. 정부가 경제위기 속 일자리 대책으로 내놓았던 청년인턴과 희망근로와 같은 임시직 늘리기 정책이 비정규직 감소세를 반전시켰다는 얘기다.

중·고령층의 비정규직 증가와 더불어 기간제 비정규직 가운데 상용직과 임시직이 각각 16만4000명, 43만1000명이 늘어난 데 반해 일용직은 오히려 14만5000명이 줄어든 것은 그 근거다. 희망근로와 청년인턴은 늘어난 기간제에 해당된다.

산업별 비정규직 추이를 보면 둘의 연관관계는 좀 더 명확해진다.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된 경제 위기의 한파 등으로 건설업, 광공업, 제조업, 전기·운수·통신·금융업에서는 모두 비정규직이 줄었다. 가장 많이 감소한 산업은 전기·운수·통신·금융업으로 지난해 8월에 비해 5만7000명이 줄었다.

그러나 사업·개인·공공서비스업은 전년도에 비해 43만7000명이 늘어났다. 이 산업은 희망근로 및 청년인턴과 바로 연결돼 있다. 때문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은 "감소세이던 비정규직이 늘어난 것은 전적으로 희망근로와 청년인턴 때문"이라고 말했다.

"희망근로·청년인턴 사라지면 질 좋은 일자리도 늘어날까? 글쎄…"

▲경제가 좋아지면 현재의 비정규직 증가세는 멈출 수 있을까? 단순하게는 그런 계산이 나오지만 전문가들은 고개를 젓는다. ⓒ프레시안
비정규직 증가세를 초래한 희망근로와 청년인턴은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임시 정책이다. 경기가 회복되면 중단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경제가 좋아져 이 두 사업이 중단되면, 현재의 비정규직 증가세는 멈출 수 있을까? 단순하게는 그런 계산이 나오지만 전문가들은 고개를 젓는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경기가 회복되면 무엇보다 일용직이 늘어난다. 일용직은 경기 여파를 직접적으로 받는 곳이어서 지난 1년 사이에는 오히려 줄어들었지만, 경기가 회복되는 속도와 비례해 늘어날 것이라는 추정이다. 비정규직이 줄어들었던 제조업과 건설업의 비정규직 규모도 경기가 활성화되면 다시 늘어날 확률이 높다.

상용직과 임시직의 규모도 줄어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국노동연구원 은수미 연구위원은 외환위기의 여파가 통계로 드러났던 2001~2003년을 언급했다. 외환위기 때 광범위하게 퍼진 '정규직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고용의 확산'이 통계로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 이 때다.

2001년 26.8%였던 비정규직 비율(통계청)은 2002년 27.4%에서 2003년 32.6%로 급증했고 다시 2004년 37%까지 치솟았다. 3년 동안 무려 10%포인트 이상 급증한 것이다. 정부는 정규직으로 분류하는 장기임시직을 비정규직에 포함시키면 같은 기간 비정규직 규모는 55.7%(2001년)에서 55.9%(2004년)로 늘어났다.

은수미 연구위원은 이를 "경로 의존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정책을 통해 고용 패턴이 일단 한 번 구조화되면 '경로 의존성'이 생겨 경기가 활성화되더라도 같은 방향으로 고용의 형태가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것. 외환위기 이후의 효과가 그로부터 4~5년 후부터 본격화됐던 것처럼, 지난 경제위기를 통해 또 한 번 구조화된 고용 패턴은 앞으로 최소 4~5년 동안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특히 청년인턴 제도의 경우 정부의 지원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시장에 또 다른 고용 형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신입사원을 처음부터 정규직으로 뽑기 보다는 인턴으로 먼저 채용하는 관행이 굳어진다는 얘기다.

또 지난 상반기의 비정규직법 개정 논란이 시장에 보낸 시그널이 무엇인지도 이번 조사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났다. 정부가 주도한 법 개정 논란이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된 것을 감안하면 지난 1년 사이 비정규직이 늘어난 것은 시장이 '법을 어기고 비정규직을 계속 쓰거나 정규직 전환 대신 해고 후 신규 채용의 방법을 선택해도 문제 없겠구나'라는 판단을 내렸음을 의미한다. 은수미 연구위원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법의 효과는 생각보다 빨리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법의 효과가 사라졌다는 것은 법을 통해 비정규직 규모를 줄이는 방식은 어렵다는 얘기가 된다. 비록 정부가 법 개정은 이루지 못했지만, 경제위기를 핑계로 대두된 법 개정 논란의 효과는 충분히 본 셈이다. 좋은 일자리 대신 나쁜 일자리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은 이런 근거에 기반하고 있다.

"일자리 위기 벗어나려면? 정부 정책이 변해야"

그렇다면 일자리 위기를 탈피할 방법은 어디에 있을까? 원인을 제거하는 것, 즉 임시직 일자리 늘리기 중심의 정부 정책이 변하는 길 뿐이다. 질 낮은 일자리 늘리기에 예산을 쏟아붓고 있는 지금과 180도 다른, 새로운 시그널을 시장에 줘야하는 것이다.

은수미 연구위원은 "나쁜 일자리를 30만 개 늘릴 것인가, 좋은 일자리 10만 개와 나쁜 일자리 10만 개를 함께 늘릴 것인가라는 선택지 가운데 후자를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 연구위원은 "시간은 걸리겠지만 좋은 일자리에 대해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선도하면 시장이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비정규직의 사용 기간을 제한하고 차별을 금지시킨 법이 만들어져 시행된 2007년부터 비정규직 규모가 감소했던 것은 정부의 의지가 시장에 미치는 시그널의 효과를 보여준다. 또 그 효과가 지난해 정부의 '법 개정' 시도를 통해 통계에서 사라져 버린 것도 앞으로 가야할 길을 보여주는 중요한 포인트인 셈이다.

▲ 일자리 위기를 탈피할 방법은 어디에 있을까? 원인을 제거하는 것, 즉 임시직 일자리 늘리기 중심의 정부 정책이 변하는 길 뿐이다.ⓒ프레시안

/여정민 기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