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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정치의 사법화, 슬픈 헌법의 시대

- 검찰개혁의 방향과 과제 -

 

 

1. 이명박식 법치주의는 헌법도 무시한 공안법치

 

이명박 정부만큼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정권도 없는 것 같다. 입만 열면 법치주의요, 엄정한 법집행이다. 대화와 타협과 소통은 사라지고 공권력을 앞세운 ‘공안법치’만 남았다. 정부의 지시에 불응하면 불법이요, 정부가 규정한 불법은 이유불문 단죄의 대상이다. 집회의 자유도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 않다.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이명박식 법치주의’ 앞에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다.

 

 

 

 

 

 

 

법은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이다. 제왕이 통치하던 시절 법은 백성을 통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민주공화국에서 법은 주권자인 국민이 제정한 헌법에 의거 국민이 선출한 입법기관이 만든다. 법은 선출된 대표자가 이끄는 행정기관에 의해 집행되고, 다툼이 있거나 법을 어겼다는 주장이 제기될 경우 사법기관의 판결에 의해 적법성이 판단된다.

따라서 모든 법률에 우선하는 것이 헌법이요, 헌법에 우선하는 것이 국민이다. 입법, 사법, 행정기관은 헌법을 지킴으로써 민주적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헌법을 지키지 않는 법치는 법치가 아니다. 헌법을 지키지 않는 법치는 민주적 법치, 시민적 법치가 아닌 제왕적 법치일 뿐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헌법이 무시되고 있다. 국민들은 1년 전부터 ‘대한민국 헌법 제1조’라는 노래를 촛불집회의 주제가처럼 부르고 있다. 국민주권과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와 같은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돌려달라는 요구이다. 물론 과거 군사독재시절에는 헌법마저도 권력자의 마음대로 고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민주화를 이룩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누구보다 법치를 강조하는 정권에 의해 헌법이 무시되고 있다니 무슨 얘기인가? 헌법을 수호할 의무를 가진 대통령에 의해,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국민 앞에 선서까지 한 대통령에 의해 헌법이 무시되고, 검찰과 경찰 등 공안권력을 내세운 ‘공안법치’가 자행되고 있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믿기 어려운 일이 대명천지에 벌어지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2.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

 

이명박 정부가 대놓고 헌법을 무시할 수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정치의 실종으로 인한 ‘정치의 사법화’ 경향이다. 국민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선출하여 권한을 위임한다. 선출된 권력은 정치적 문제들을 해결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그러나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교착상태에 이르면 모든 문제의 해결을 사법기관(검찰과 같은 준사법기관을 포함한)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이것이 정치의 사법화다. 최근 정당이 검찰에 고소고발을 남발하고 있는 것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국민이 선출하지도 않았고 국민에 대해 책임도 지지 않는 사법기관이 정치가 담당해야 할 문제들을 떠맡게 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일이다. 주권자인 국민이 문제 해결과정에서 소외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원인은 최근 검찰과 법원이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잘 지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법이 정치화하고 있다. 국민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검찰이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정치적 보복에 의한 참극으로 규정하고 있다. 법원장에 의한 재판개입 의혹은 법원내부로부터도 심각한 문제제기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과 법원의 중립성과 독립성이 국민들로부터 의심받고 있다.

그 정점에는 대통령이 있다. 검찰은 대통령의 탐욕에 의해 사유화되고 있다는 의심을, 대법관은 대통령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이명박 정권의 ‘공안법치’가 가능한 원인이다. 정치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신뢰하지도 않는 검찰과 법원에 의존하고, 검찰과 법원은 대통령의 눈치만 보고 있으니 이명박 대통령은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사실 ‘공안법치’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적 이익을 위해 법치를 빙자한 것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사안법치’이다.

제4부의 권력인 언론도 우호적이다. 절대적인 시장을 점유하는 보수족벌언론이 이명박 정부를 옹호하고 눈꼴 시릴 정도로 아첨하고 있으니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거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명박 대통령 눈에 국민이 들어올 리 만무하고 헌법이 존중될 턱이 없다. 그 과정에서 주권자인 국민은 철저히 무시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처절하게 짓밟히고 있다.

 

 

 

 

 3. 검찰개혁의 방향과 과제

 

이명박 정권에 의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억압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시는 용산참사의 희생자나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억울하고 비통한 불행을 반복하지 않도록 정치가 본연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정치의 사법화를 경계하고 극복해야 한다. 정당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여 국민이 원하는 정치, 국민에게 책임지는 정치를 하기 위해 반성과 변화와 쇄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당과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대의민주주의와 정당정치체제는 붕괴하고 말 것이다.

 

사법기관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과 자정노력도 당장 추진해야 한다. 특히 국민들로부터 분노와 불신의 대상이 되어버린 검찰에 대한 개혁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절실하고 시급한 과제이다. 과거 참여정부에서 법무부장관을 지낸 나로서는 검찰개혁 실패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지금 당장 검찰개혁에 나서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용산참사,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이 되풀이 될 것이며, 국민이 겪는 고통도 늘어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퇴임한 지 1년 반도 안돼서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셨다. 검찰에 의해 발가벗겨지고 언론에 의해 난도질당했다. 측근들과 형님이 줄줄이 잡혀 들어갔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도 소환되었고, 대통령께서도 직접 검찰에 출석했다. 얼마나 큰 모욕감과 수치심과 분노를 느꼈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국민들은 자기 일처럼 슬퍼하고 분노했다. 이명박 정권에 의해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인권이 유린되는 현실에서 노대통령의 불행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얼마나 더 심각한 사안이 발생해야 검찰을 개혁할 것인가? 더 얼마나 불행한 사태가 벌어져야, 더 얼마나 억울한 죽음이 나와야 검찰을 개혁할 것인가? 지금이 아니면 검찰개혁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사람 몇 명 바꾼다고 국민의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인적쇄신도 필요하지만 제도적 개혁이 더 절실하다. 나는 오늘 검찰개혁의 3대 방향과 10대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검찰이 정권의 시녀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1. 법무부와 검찰의 실질적 분리가 필요하다. 검사의 법무부근무를 최소화하여 법무부의 검찰 감독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법무부의 고위직은 대부분 검사가 임명된다. 법무부에 근무하는 검사의 숫자를 최소화하고 민간 법률-인권 전문가를 대폭 영입하여 법무부의 정책기능을 높이고 검찰 견제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2. 서면에 의하지 않는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를 엄격히 금해야 한다.

법무부장관이 기록에 남지 않는 수사지휘를 남발함으로써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서면에 의한 수사지휘권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수단으로 존치할 필요가 있다.

3. 인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검찰인사위원회에 과반수의 외부 인사를 참여시켜야 한다.

4. 검사의 청와대 파견을 금지하여 청와대의 지시나 간섭의 위험을 방지해야 한다. 검찰청법은 검사가 대통령실에 파견되거나 대통령실의 직위를 겸할 수 없다고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사 사직 후 파견되었다가 다시 검사로 복직하는 편법을 사용하고 있다.

 

둘째, 검찰권 남용을 통제해야 한다.

이를 위해,

5. 법무부와 검찰의 감찰기능을 강화시켜야 한다.

6. 검사 임용제도를 개선하여 다양한 생각과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검사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는 검찰의 획일화, 기득권화를 방지하기 위한 요체이다. 로스쿨제도의 도입으로 그 제도적 기반이 형성되고 있다.

7. 독립적 수사기관(한국형 FBI)을 신설하여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분리해야 한다. 한국의 검찰은 기소권은 물론 수사권과 타 수사기관에 대한 수사지휘권까지 가지고 있어 가히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검찰이다. 이 집중된 권한을 적절히 분산시킴으로써 기관 상호간에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권한의 남용을 방지하도록 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검찰은 기소권만을 가지고 있고 수사는 전국적으로 수 만개에 이르는 상호 독립된 경찰 조직과 연방 법무부 산하 전담수사기구인 FBI 등이 담당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에도 참작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대검 중수부의 수사기능을 폐지하고 공수처를 신설하도록 해야 한다.

8. 수사-공소심의위원회, 구속심사위원회에 외부 인사를 참여시켜야 한다.

수사 절차와 방법, 구속의 당부(當否) 등을 심사하는 기구를 모든 검찰청에 설치하고 외부 인사를 참여시켜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검찰심사회 또는 대배심제를 도입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독립기구인 검찰심사회가 공소 제기가 적절한지를 심사하고 있고, 미국에서는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대배심제도(Grand jury)가 있어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방지하고 있다.

 

셋째, 인권 침해적 수사 관행을 혁파해야 한다.

이를 위해,

9. 피의사실 공표를 차단하고 위반자를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범죄수사는 은밀하게 진행해야 한다. 이를 수사의 ‘밀행성’이라고 부른다. 수사내용이 공개되면 범인의 도주와 증거인멸의 위험이 커질 뿐 아니라 피의자를 비롯한 관계자들의 인권을 침해하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 형법은 피의사실 공표죄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수사의 ‘밀행성’을 무시하고 피의사실 공표죄는 사문화(死文化)해 버렸다. 수사기관과 언론이 밀착해 수사내용을 상세히 보도하고, 때로는 과장하고 왜곡하고 꾸며서까지 보도한다. 법무부장관 재직시 장관에게도 보고되지 않은 수사기밀이 신문-방송에 멋대로 흘러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수사기관은 자기들이 저지른 피의사실 공표죄에 대해 수사를 할 리 없다.

수사의 밀행성을 지켜야 한다. 수사기관에 대한 언론의 접촉을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 검찰 기자실을 폐지해야 한다. 피의사실 공표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수사하고 기소하도록 감찰기능을 강화하고 기소법정주의를 도입해야 한다.

10. 증거에 의한 과학수사체계를 강화하여 자백에 의존한 수사를 지양하고 과학수사를 위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4. 법을 지키는 사람, 법으로 먹고사는 사람

  

법치주의는 시민들이 제왕의 통치에 저항하기 위해 의회가 제정한 법에 의한 지배를 강조한 것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이후 히틀러 시대를 거치면서 법치주의는 형식적 법치와 실질적 법치로 구분되었다. 악법을 제정하더라도 그 법에 근거한 법집행이라면 이를 법치로 인정하고 형식적 법치주의라 이름 붙였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 정권은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권리도 무시하고, 법률도 제멋대로 해석한다. 아직 형식적 법치주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히틀러의 교훈을 되살려 형식적 법치주의라도 이루기 위해 미디어악법, 개악된 집시법, 비정규직법 등을 국회에서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실질적 법치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다. 통탄할 일이다.

 

법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대통령, 국회의원, 판사, 검사, 변호사, 교수, 공무원 등은 법이 없으면 당장 굶어죽을 사람들이다. 여러분은 앞으로 법으로 먹고살겠다고 비싼 등록금 내고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했다. 앞으로 3년 뒤면 여러분은 변호사로 판사로 검사로 법을 다루며 살게 될 것이다.

 

법은 이 나라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한다. 법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더 철저하게 법을 지켜야 한다. 법을 준수할 의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법을 수호할 의무도 가져야 한다. 헌법은 헌법을 수호할 의무를 지는 사람으로 대통령 한 사람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가장 많이 노력한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사랑하고 시민의 법치를 존중하는 수많은 국민들이다. 여러분은 그들이 피와 땀으로 쟁취한 민주주의체제, 헌법체제에서 법으로 먹고 살아야 할 사람들이다. 누구보다 국민 앞에 겸손하고 법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법을 수호한다는 것은 실질적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법의 내용이 헌법과 인류가 추구하는 가치에 부합해야 한다. 그리고 그 법의 집행과 적용이 그러한 입법취지에 맞도록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앞으로 실질적 법치주의를 실현하느냐 못하느냐는 전적으로 여러분들에게 달렸다.

 

법을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법의 정신을 깨닫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법의 정신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인권에 대한 존중, 약자에 대한 배려, 공정한 시장경쟁질서 확립, 타인에 대한 관용과 같은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법공부의 처음과 끝은 인간학에 있다. 여러분은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 법을 지키겠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법조인의 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