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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저는 지방 사범대에 다니고 있는 평범한 학생입니다. 아마 학교 내에서 가장 저렴하게 학비를 내고 다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등록금은 330만원정도. 부모님께 의지해서 식충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정이 좀 낫지만 등록금을 직접 내거나 학자금 대출을 내는 학생들은 학기가 다가오는 것이 두렵다고 합니다. 교수님들은 자신들이 직업교사가 된 것 같다며 지식의 전당이자, 학문의 전당인 대학이 지금은 직업 교육장 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현재의 대학,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우리나라가 발전하기를 바라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니, 우리나라가 모델 삼을 만한 독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독일은 복지가 좋은 편에 속하는 나라입니다. 특히 교육복지는 아주 훌륭합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무상지원이고, 대학생 간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일부 학생들을 지방자치단체에서 용돈 비슷하게 지원해줍니다. 다시 우리나라를 볼까요. 참 즐겁습니다, 아르바이트 하기. 학기 중 세달은 물론 방학동안에는 말 그대로 미친듯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다음 학기에 등록할 수 있습니다.

다른 선택도 물론 있습니다. 초식 동물인 서민들을 잡아 먹는 사자 은행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는 것입니다. 학자금 대출. 역시 참 즐겁습니다. 제 친구중에는 군대에 간 2년 동안 이자를 제 때 내지 못했다고 이번 학기에 학자금 대출도 못받아 어둠의 업소(?)에 가서 열심히 일한 대가로 간신히 이번 학기 등록금을 냈습니다. 이런 현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미셸 푸코, '죽음의 권력'과 '삶의 권력'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Paul Foucault)는 이 현실을 적나라게 지적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현대 민주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민주 사회에서는 각 개인이 정치나 행동의 주체가 되어 자기를 실현한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푸코의 생각은 이와 매우 다릅니다. 근대 이전 봉건 사회의 권력은 특정한 통치자가 소유하고 있었는데 푸코에 의하면, 죽음(사형)의 공포를 무기로 사람들을 지배하고 질서를 유지했던 '죽음의 권력'
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이 없는 현대에서는 '삶의 권력'이 인간을 지배한다고  푸코는 생각합니다. 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인은 스스로 그 사회가 정한 훈련을 받고 그 사회가 요구하는 규격을 따라야 하며 그렇지 않고는 생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회는 삶을 위한 조건을 획일화 하고 개인을 규격화하는 것을 통하여 질서를 유지하는 '삶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입니다.

'주체'
를 일컫는 'subject'는 근대 이전에는 '신하'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였습니다. 근대에 들어와 사람들은 인간을 주체라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실제로는 인간을 규격화하는 권력에 복종하는 신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료타르(Jean Francois Lyotard)의 지적처럼 현대에서의 '해방'이니, '자기 실현'이니 하는 '위대한 이야기'는 '삶의 권력'을 눈가림하는 신화같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일 뿐인 것입니다.

정말 통쾌하지 않습니까. 이 현실과 너무도 닮아있지 않습니까. 대학을 다녀야 사회에서 인정받고, 사회의 인정을 받기 위한 이들은 대학을 다니기 위해 빚을 산더미 처럼 지고, 그 빚을 갚기위해 대학생들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위해 자신의 스펙을 만들고, 스펙을 만들지 못한 학생들은 3류 낙오자로 전락하는 이 사회가 푸코가 지적하는 '삶의 권력'과 너무도 닮아있지 않습니까? 

저는 더 많은 책을 읽고 싶고,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충분히 발휘해서 우리나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삶의 권력'에 눌린 나머지 저는 그렇게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다니고 있는, 저와 같은 과에 재학중인 사범대 학생들은 '삶의 권력'을 벗어나지 못한 나머지 지식의 전당이요,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서 임용시험 공부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삶의 권력'은 현재로선 피할 길이 없는 모양입니다. 삶의 권력. 이 권력을 피하는 방법이 정말 없을까요. 


사회적 안전망, '삶의 권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저는 수학문제 처럼, A를 대입하면 답이 나오는 그런 명쾌한 해법은 아니지만, 해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권력'에 휘둘리고 있다면 삶의 권력에서 벗어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생각하는 해법은 바로 복지정책입니다. 학비를 위한 일개미, 3류 낙오자로 찍히지 않기 위한 즉, 삶의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방법입니다. 이 괴물을 물리칠 병기는 바로 복지정책입니다.

국가가 지식인의 전당인 대학에 지원의 폭을 넓히고 실직자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이들을 삶의 권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입니다. 삶의 권력을 벗어난 이는 더 창조적이고 발전된 생각을 가짐으로써 국가에 봉사하고 좋은 영향력을 끼칠 것이고, 정부의 재정 지출은 그들의 소비로 인해 다시금 국가의 재정으로 돌아올 것이며, 많은 이들이 이러한 경제 및 사회 선순환을 통해 풍요롭고 발전된 삶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지난 10년간의 복지 황금기는 지나갔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절제가 자유를 주는 아름다운 시대는 갔습니다. 하지만 그 아름답던 향기는 아직도 남아, 지금 현재에도 그 향수를 찾아 이렇게 몇 글자 적어봅니다.


* 2009년 4월 13일에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