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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Lee/책

라쇼몽

tulipmania 2009. 5. 3. 18:09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羅生門)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이 영화는 삭막한 시대에서 부부가 길을 가다가 도적을 만나 남편은 살해당하고 아내는 겁탈당하는 사실관계가 아주 단순한 강도살인, 강간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도적의 입장에서, 아내의 입장에서, 무당의 입을 통한 죽은 남편의 입장에서, 그리고 숨어서 사건을 지켜본 나무군의 입장에서 사건을 재구성하여 동일한 사건에 대한 서로 너무나 다른 네편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그 어누 누구도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 교토 지방에서 가장 악명 높은 도둑이라는 다조마루는 그가 여자를 겁탈하고 남편을 죽였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는 칼싸움도 제대로 못하는 겁쟁이로 또 다른 겁쟁이인 여인의 남편과의 싸움에서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다조마루는 도적으로서 자신의 허명만이라도 지키고 싶었습니다. 다조마루의 이야기는 여인의 강인함을 강조했지만, 여인은 자기의 약함을 눈물로 호소합니다.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한 남편은 자기가 몸을 버렸다고 냉랭한 눈으로 쳐다보았고, 여인은 남편에게 자기를 죽여줄 것을 호소합니다. 그 여인은 결국 남편을 죽이고 자살하려 했으나 자살에 실패했다고 울면서 말합니다. 무당의 입을 통해서 죽은 남편은 아내를 비난합니다. 아내가 도적 다조마루에게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다조마루와 달아나다가 멈춰선 아내는 도적에게 남편을 죽이고 가자고 말했고 도적조차 그 말에 놀랍니다. 다조마루는 여인을 쓰러드리고 발로 밟고는 남편에게 이 여자를 죽일까 살릴까 물었습니다. 마침 여자가 달아나자 다조마루는 여자를 쫓아갔다가 몇 시간 뒤 돌아와 남편을 풀어주었습니다. 다조마루가 더난 뒤 남편은 배신감 때문에 자살했다고 말합니다.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어서 객관적 입장이라 할 수 있는 나무꾼도 법정에서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사건 현장에서 값비싼 단검을 훔쳐갔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진실을 이야기 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임을 보고, 영화에 등장하는 승려는 이런 인간사의 모습이 전쟁이나 지진, 화재나 역병보다 훨씬 더 무섭다고 탄식합니다. 반쯤 부서진 건물에 라쇼몽이란 현판이 걸린 큰 문 아래에서 비를 피하면서...


 너무나 즐겁게 봐서 라쇼몽의 원작을 샀습니다. 사람은 이처럼 불완전합니다. 라쇼몽에 나오는 모두가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신념이 진실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사실, 이 모두가 진실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점이 모두 옳습니다. 신념이 곧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실은 타협을 통해서만 밝혀집니다. 그 타협이란 서로간의 소통과 자신의 신념이 틀리거나 잘못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이해와 협력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 않는 이가 없으며 비난을 피할 수 있는 이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해와 협력은 양심을 속인 이의 자기반성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잘못이 없는 이에게는 면죄부가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서양미술사에서는 시대에 상관 없이 어떤 양식 안에서든지 예술적인 완성을 이룩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우리 개개인의 삶도 어쩌면 각자의 신념에 따라 인간적인 완성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