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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빅터 프랭클, 의미요법

tulipmania 2009. 10. 25. 15:05

아우슈비츠에 먼저 도착한 친구가 알려주었다.


“유리 조각을 쓰더라도 매일 수염을 깎게.

그러면 조금이라도 젊어 보일 테고

나치는 자네를 며칠이라도 더 써먹으려고 살려둘 테니까. 꼭 명심하게!

쓸모 있어 보이는 게 제일 중요하네.“


고귀한 독일인은 인간 이하의 유태인을 존중해서 대우할 것이다.

가혹한 처사는 절대 없을 것이다.


- 히틀러


나치가 모든 소지품을 꺼내라고 명령했다.

나는 한 묶음의 원고를 보여주며 간절히 부탁했다.


“저, 이건 제가 심혈을 기울여서 쓰고 있는 원고입니다.

저는 어떠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이 원고를 꼭 간직해야 합니다.

제 말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이 빌어먹을 당장 목욕탕으로가!”


그 날, 수용소에 도착한 유태인의 90%가

독가스가 나오는 가짜 목욕탕에서 목숨을 잃고

시커먼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살아남은 10%가 되어 수용소에서의 첫 번째 밤을 보내면서 나는 결심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앞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글로 남기겠다고.


유태인들은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우리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르면 건방진 유태인들을 침묵시킬 것이다.


- 히틀러


수용소 생활은 매 순간이 지옥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내를 생각하며 견뎌냈다.

다른 수용소로 끌려간 아내의 생사 여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살아 나가서

아내를 만나고 싶었다.

육체적 자유는 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 나의 의지는 분명 내 것이었다.


“유태인은 멸망해야 한다. 유태인은 제거돼야 한다. 그래야 인류가 살 수 있다.”


- 히틀러


한 작곡가가 희망찬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한 달 후면 모든 게 끝날 거야.

꿈을 궜는데 다음 달 3월 30일에 독일군이 항복했거든.“


3월 30일이 되었지만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시름시름 앓던 작곡가는 바로 다음 날인 1945년 3월 31일에 숨을 거두었다.

나는 깊이 깨달았다.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사람은 자신의 목숨마저도 쉽게 포기하게 된다는 것을.

고통 속에서 죽음을 택하는 것은 가장 쉽고도 가장 나태한 방법이니까.


1945년 4월 히틀러 자살.

1945년 4월 빅터 프랭클 유태인 수용소에서 해방


빅터 프랭클(1905 - 1997)

유태인 수용소에서 경험을 바탕으로

로고 테라피(의미 요법)를 발표한 심리학자.

사람은 어떠한 최악의 조건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 빅터 프랭클

- 지식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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