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를 위한 북한 외교정책과 안보의 성공을 바라며
북한이 인공위성 '광명성 3호'를 발사했습니다. 우리나라 국방부는 '광명성 3호'가 지구 궤도를 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13일 북한의 광명성 3호가 지구를 타원형으로 돌고 있으나, 기능 작동이 제대로 되는지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일단 발사대에서 내렸다가 다시 설치했다는 사실을 미국이 파악하고도 한국에는 알려주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일본에게는 정보를 제공하고 우리나라에는 뒤늦게 정보를 제공한 것입니다. 일본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분별없이 (언론 등에) 정보를 유출하는 데 미국이 불만을 품고 제재를 한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지, 우리나라와 미국의 대북외교와 안보에 관한 글을 써볼까합니다.
내부 투쟁, 비일관성, 외교적 무능으로 통칭되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부시가 취임한 2001년 당시,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동결 상태였으며 김정일은 기껏해야 한 개 내지 두 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무기급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시가 김정일에게 친서를 써서 보낼 무렵 북한은 지하 핵실험을 실시하고, 많으면 열 개까지 핵탄두를 제조할 수 있는 분열 물질을 보유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 핵 관련 노하우나 분열 물질을 테러 집단에게 제공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 핵 국가가 되어 있었다."
- 전 CNN 한반도 전문기자 마이크 치노이
전 CNN 한반도 전문 기자로 1989년 이후로 북한을 열다섯 차례나 방문한 마이크 치노이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부 투쟁, 비일관성, 외교적 무능으로 통칭되는 대북 정책을 펼친 미국 행정부"
2001년 한미 정상회담은 '실패작'이었습니다. 75세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의 표현을 빌리면 "위엄을 갖춘 동양의 노신사"였습니다. 하지만 조지 W. 부시는 김대중을 '이 양반(This man)'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자신의 가벼운 회견을 시작합니다.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리처드 아미티지는 이렇게 평했습니다. "고지식함과 무지, 외교력의 결여, 그리고 김대중의 출신 국가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빚어진 실수였다" 이 짧은 일화를 통해 미국의 대북 외교정책이 얼마나 무지하고 비전문적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6자회담 후반기에 크리스토퍼 힐의 차석이던 한국계 빅터 차는 "북한은 미국과의 합의에서 '선거와는 무관한(election-proof)'의를 원했고 대통령이 바뀌더라도 수명이 더 오래가는 합의를 원했다"고 회고합니다. 그러나 부시에게는 오로지 ABC(Anything But Clinton)였습니다.
2002년 1월 29일 부시는 연두교서 연설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습니다.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이던 브렌트 스코크로프트는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해서 그런 말이 들어갔느냐. ····· 악의 축은 또 뭐냐. 나는 대통령 연두교서 연설이 어떻게 검토되는지에 대해 좀 알고 있다. 이번의 경우 검토가 이뤄지기는 한 건가"라며 기겁을 했습니다.
결국 부시는 초반 임기 6년 동안 '기본합의를 폐기하고 지속적인 외교적 주고받기에 관여하기'를 거부한 대신 '북한을 강제하여 미국의 요구에 굴복시키려는 일로 소비'했습니다.
이처럼 평양과 워싱턴 사이에서 한반도의 운명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북핵 문제는 단순히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며 미국의 실패는 곧 우리나라의 실패가 됩니다.
오바마의 대북정책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특사로 임명된 스티븐 보즈워스는 "북한은 핵무기를 목적이 아니라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문제는 북한의 약속을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어떻게 실천으로 이끌어 내느냐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됩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거론되는 포괄적 접근 방안에는 미국 핵 위협의 근본적 해소와 군축 조치, 이른바 '군사적 상응 조치'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입니다.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 이후까지 미국의 평화협정 논의에 상당한 진정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이 터지면서 사고 직후 월터 샤프 주한미군 사령관은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황이 없다"고 말했지만, 북한의 소행이라는 결론을 설정하고 이를 입증하는 증거를 찾아내거나 만들어내는 상황을 연출합니다. 이는 일본의 후텐마 기지 이전에 대한 소신을 굽히지 않는 하토야마 내각을 압박하고 미국의 국익을 챙길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보입니다. 결국 6자회담 재개의 동력이 상실되면서 오바마 정부의 북핵 정책은 '북핵 폐기'인지 '북핵 관리'인지 '천안함 사건'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실패한 대북정책
북한은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가 곧 '북미 관계 정상화'이며, 이를 통해 '조선 반도의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양자 대화'론을 주장합니다. 반면 미국의 관심은 대량살상무기의 '비확산'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 사이에서 우리의 외교 안보 정책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17대 대선이 코앞이던 2007년 11월, 김양건 북한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남한을 방문했습니다. 당선이 예상되는 이명박 정권의 대북 정책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탐색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보수 진영 인사들은 '보수까지 껴안을 수 있는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비핵·개방·3000'으로 대표되는데, 이는 6자회담 참가국이자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에 제동을 걸고 있는 우리의 대북정책은 '악의적 무시'의 정책적 표현이었고, 완전히 실패한 1기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 정책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대북 정책의 실패로 이명박 정부는 대북 억제력은 물론이고 최소한의 대북 정보력까지 상실했습니다. 결국 북한 외무성의 성명을 보면 '자체의 경수로 발전소 건설'을 언급했고, '고농축 우라늄(HEU) 프로그램 개발' 카드까지 꺼내들었습니다. 우리의 대북 외교의 실패가 우리의 위험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우리의 안보 정책은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 수교를 한반도 비핵화의 수단으로 간주하지 않고, 한반도 비핵화를 단순한 북핵 문제의 해결이라는 좁은 틀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핵무기 없는 세상'이라는 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며, 북한과의 협상 목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군사정책을 자제하는 정책을 실행해 옮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안보 정책 보다는 정치적 이해득실만을 따져 북한 문제를 따졌습니다. 결국 미국은 북한 외교를 정치적 이해득실만 따지는 이명박 정부에게 신뢰를 잃었고 우리의 안보 문제에 직결된 북한 정보를 알리지 않는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외교정책, 안보 정책의 실패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MB정부의 대북 외교정책 실패는 안보의 위협으로 다가왔고, 피해는 결국 시민들에게 '공포'라는 이름으로 돌아왔습니다.
특수교사가 장애학생을 가르치는 방법
대부분의 장애를 가진 학생들은 쾌활하고 명랑하고 사교적이지만 간혹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거나 분노조절을 잘 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이 학생들은 다른 친구들을 때리거나 자해를 하거나 책상, 의자 등 주위 물건들을 던지거나 해서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공격적인 행동을 가진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는 다양한 접근들이 필요합니다. 생물학적 모델, 심리역동적 모델, 생태학적 모델, 행동주의 모델, 인지행동모델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들이 접목됩니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행동중재 방법은 행동주의 모델인 '긍정적 행동 지원'입니다.
선행자극의 구조를 바꾸거나 수정해서 예방하고, 행동을 분석해서 왜 공격적인 행동을 보였는지를 찾고, 이후에 바람직한 행동에는 칭찬을 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에는 벌을 주는 등의 일련의 과정을 거쳐 사회에 보다 통합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학생들일지라도 함께 같은 장소에서 수업을 듣고 사회에 통합돼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회에서 이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으며 동시대에 살아가는 같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긍정적 행동 지원'이 선행되기 전에 반드시 교사와 학생간의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라포(rapport) 형성이 되기 전에는 그 어떤 교육적 방법도 사실상 의미가 없습니다. 라포가 형성된 이후에 선행자극, 행동, 후속결과에 따른 보상이 유의미해지는 것입니다.
한반도, 한시적 평화가 아닌 영구적 평화로
"재래식 무기건 대량살상무기(핵·미사일·생화학무기 등)건 '군비감축'을 하려면 그전에 '군비 통제'라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리고 군비 통제를 하기 위해서는 '군사적 신뢰'가 구축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에 앞서 '정치적 신뢰'가 먼저 형성돼야 하는 거고, 정치적 신뢰는 비정치 분야에서의 '교류와 협력'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게 국제정치학자나 분쟁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입니다.
그게 정설이고 역사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소 전략무기감축(START)이란 것도 1970년대에 소위 '헬싱키 프로세스'를 통해서 동서 진영이 경제·사회·문화 교류를 하고 정치적 신뢰를 쌓으면서, 맨 마지막에 가서야 군비 감축 협상을 한 겁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교류·협력', '정치적 신뢰', '군사적 신뢰', '군비 통제', '군비 감축'의 과정을 통해 '남북통일', '한반도의 평화'가 정착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적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 보다 확실한 안보가 있을까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를 거쳐 이제 막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으로 대표되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교류·협력' 단계를 밟았습니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지나 우리는 '정치적 신뢰'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는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지난 이명박 정부 5년간 대북 외교 실패, 안보 무능으로 시민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았습니다.
2012년 12월 19일 수요일.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를 위해, 대한민국의 튼튼한 안보를 위해 '민주통합당 2번 문재인'에게 투표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