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이 나에게 들려주는 유럽여행기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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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 인천공항 - 런던 히드로 공항
알람이 울린다. 어제 맞춘 알람 예정 시간은 오전 3시 30분. 하지만 내 알람은 울지 않았고 다행히 배우자의 알람이 울고 있었다. 핸드폰을 들어 알람 예정 시간을 보니 오후 3시 30분이었다. 어제 분명히 오전으로 바꾼 것 같은데 아니었다. 다행히 새벽이다. 준비했던 유럽여행 짐을 챙긴다. 분주한 아침이다. 어제 미쳐 다 챙기지 못했던 준비를 다시 한다. 이동 중에 볼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아이패드에 옮긴다. 여권과 화폐를 다시 확인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여권과 카드만 있으면 여행은 가능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기회는 나라는 존재 확인과 돈만 있으면 누릴 수 있다. 자본주의는 참 편리하면서도 지나친 편리함으로 인해 한편으로는 소외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이 휴대전화로 뉴스를 읽는다. 카카오그룹의 카풀 영향으로 택시기사 노동자들은 카카오 택시를 거부했다. 핸드폰 어플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랜만에 콜택시에 전화를 걸어 택시를 배정받았다.
뉴스의 시대
집에서 안산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길 예약했던 콜택시가 도착했다. 친절한 택시기사님은 카카오그룹의 카풀에 단호하면서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과거 영국에서 산업적으로 수익성이 떨어지는 탄광촌 산업의 운명과 공유경제 속에서 하향 곡선을 그릴 택시 산업의 운명이 교차되었다.
알랭 드 보통은 <뉴스의 시대>를 통해 뉴스가 우리 삶에서 점하고 있는 지배적인 위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뉴스가 교묘하게 눈길을 회피하는 뉴스 자신을 꼬집으면서 말이다. 카카오그룹에 대비해 택시 기사들은 힘이 없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택시 기사들은 약자다. 하지만 이는 뉴스 매체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서 택시 기사를 중심으로 한 뉴스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내용을 힘과 권력이 있는 대기업 중심의 기사에 택시 기사 입장을 소수 실어주거나 혹은 택시 기사의 입장은 지면에 자리를 주지 않는다. 결국 뉴스는 지배적인 입장을 대변하게 되고 이는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철학자 헤겔의 주장처럼 삶을 인도하는 원천이자 권위의 시금석으로서의 종교를 뉴스가 대체할 때 사회는 근대화된다. 하지만 부정적인 견해로서 종교의 지위를 뉴스가 차지한다는 것은 달리 표현하면 종교의 보수성을 뉴스가 차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뉴스는 종교를 대체했고 뉴스를 통해 여론을 접하고 소비하는 소비자로서 개인의 권리와 독립성은 근대 수준으로 회귀한 것만 같다.
뉴스는 자연스레 교육에 영향을 미친다. 교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건 간에, 보다 더 강력하고 지속적인 교육은 방송 화면과 전파를 통해 이뤄진다. 뉴스에 나왔다는 사실은 진리가 우리에게 한 걸음 더 다가온 것처럼 여겨지고, 그 취향을 존중하지 않으면 우리는 미개한 사람이 된 것처럼 취급당한다. 새로운 소식을 메시아가 전한 복음으로 여기고 주변 이들에게 알리고 전하면서 우리는 사회화되고 공동체에 속한다는 안도를 느낀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면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뉴스를 확인한다. 왜 우리 대중은 계속 뉴스를 확인하는 걸까? 뉴스는 공포, 안정과 평화, 쾌락, 위안과 관련이 있다. 우리가 여행을 통해 기대, 이국적인 것, 호기심, 시골과 도시, 숭고함, 아름다움, 미술을 느끼는 것처럼 한쪽짜리의 기사를 통해서도 우리는 여행을 통해 얻는 것처럼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한시도 뉴스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는 이런 연유가 아닐까.
인천공항과 히드로 공항
알랭 드 보통은 호퍼의 그림을 이야기하면서 운송 수단의 매력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모든 운송수단 가운데 생각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은 아마 기차일 것이다. 배나 비행기에서 보는 풍경은 새로워질 가능성이 있지만, 열차에서 보는 풍경은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 열차 밖 풍경은 안달이 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그러면서도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리게 움직인다. 기차는 우리에게 중요한 감정이나 관념들이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가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가장 잘 만날 수 있는 곳이 반드시 집은 아니다“
하지만 비행기 역시 기차와 마찬가지로 새롭고 다양한 사색에 도움을 준다. 알랭 드 보통이 히드로공항에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쓴 <공항에서 일주일을>을 통해 공항과 비행기를 새로운 관점으로 봤던 것처럼 비행기 또한 기차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관점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히드로공항의 새로운 점들을 발견했다. 그의 관점을 따르면 공항은 항구처럼 만남과 헤어짐의 장소가 되기도 하고, 월스트리트처럼 자본주의의 속성을 여과 없이 반영하기도 하며, 비행기는 건축처럼 실용성과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비행은 새로움과 창의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공항은 영화 설국열차가 보여주었던 좌석에 따른 계급 차이를 보여주는데 이는 노골적이고 분명하다. 비즈니스 클래스는 짐을 부칠 때 긴 줄을 선 일반 승객들처럼 줄을 서지 않아도 되고, 비즈니스 전용 라운지를 사용할 수 있으며, 탑승 시 긴 줄을 설 필요 없이 우선 입장한다. 기내에서는 일반 승객들보다 2배는 넓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으며 좌석은 누워서 이동할 수 있다. 식사는 애피타이저, 메인, 디저트를 선택하여 먹을 수 있고 술과 음료는 원하는 대로 마실 수 있다. 클럽키친도 이용할 수 있다. 비즈니스 탑승객은 항공승무원에게 보다 많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이를 두 배 반 정도 더 많은 돈을 지불하였기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기에,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이를 수용한다. 이를 정당화하는 이유는 속물주의, 능력주의, 개인주의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영향은 때때로 현대 시민들의 지위라는 측면에서 불안을 만든다. 존 롤스는 새로운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본다. 존 롤스는 정의로운 사회를 원했고, 재능 있는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으면서 재능과 소질의 불공정한 분배를 바로잡는 것을 정의롭다고 생각했다. 재능 있는 사람을 격려해 그 재능을 개발하고 이용하게 하되, 그 재능으로 시장에서 거둬들인 이득은 공동체 전체에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평등과 자유라는 가치의 갈림길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지속해서 논의할 수 있다.
집을 떠나 안산시외버스터미널을 지나 인천공항으로, 또 인천공항에서 히드로공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렇게 우리의 유럽 여행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