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나는 지방에 있는 특수교육과에 다니고 있는 평범한 대학생이다. 특수교육을 배우면서 다른 학문도 겸해서 전공하고 있어, 학점이 부족하기 때문에 계절학기를 들었다. 수업중 영어에 관련된 과목이었다. 그 교수님은 미국에 오랫동안 거주했기 때문에 지금은 오히려 한국에서의 역문화지체현상이 나타나 한국생활이 어렵다고 말하는 분이었다. 한 논제로 '용산 참사'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다. 미국에서는 피켓시위, 촛불시위와 같은 온건한 시위 밖에 없어서 이런 과격한 시위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한국에서는 과연 온건한 시위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용산시위는 온건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을까? 

 이것은 '환경적인 요인이 한국 특유의 문제와 의식이 내포되어 있다' 라고 생각한다.  내 전공인 특수교육을 예로들어 보겠다. 미국에서는 특수교육을 받는 장애 학생들 1명에 포함되는 예산이 비장애 학생 20~30명분의 예산이 투입될정도로 사회분위기가 기본권, 평등의식이 신장되어 있고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갑자기 미국이 왜 나왔어?' 하는 이들을 위해 부연설명 하자면, 미국와 한국의 사회적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이야 선진국이니까 당연하잖아.' 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위해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유럽에서는 국민 소득 일만불(10000) 시대에 초,중,고,대학까지 전면 무상교육(17년)을 실시했다. 우리 나라는 국민 소득 이만불(20000)시대로 달려가는 이 시점에 어디까지 무상교육인가. 취학 후 아동부터 17세까지(9년)라고는 하지만 취학 전 아동은 점진적으로 실시해가는 형국이다. 무상교육 한가지만 본다면 유럽과 우리나라의 격차는 수량적으로는 최소한 8년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처럼 이 용산참사에는 우리 나라 특유의 문제와 의식이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럽과 미국의 상황과는 다르게 우리 나라에서는 먹고 사는 기본적인 생존권을 위해서 죽기 살기로 보장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미국처럼 먹고 사는 것이 보장되어 있고, 침묵과 피켓으로만 시위를 해서 정부의 동의를 얻으면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조금은 불편하겠지만 그 나름의 삶을 사는 것과, 우리 나라에서의 실패하면 갈 때조차 없는 생존권의 싸움인 필사적인 시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살기 위해 즉, 생존권을 위해 광우병이 우려되는 미국산 쇠고기를 거부하기 위한 촛불집회와 같은 맥락인 것이다. 

 심리학자인 매슬로(Maslow, Abraham H.)의 욕구위계설을 보면 인간은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소속과 애정의 욕구, 자기 존중의 욕구, 자기 실현의 욕구의 순으로 충족된다고 하고 있으며 하위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상위의 욕구를 충족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강제 철거는 용산 철거민들에게는 생존에 필수적인 주거지를 빼앗는 행위였으며 이들의 자아실현의 기회를 빼앗는 것과 동시에 이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생존권을 빼앗아가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이에 이들은 목숨을 내걸고 투쟁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헌법 제 10조에서는 인간의 행복권에 대해서 언급한다.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정부는 이들의 인간으로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하기 보다는 이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빼앗고 행복을 앗아갔으며, 이들의 불가침적인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해야 했음에도 이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이들이 목숨을 담보로 시위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제공했으므로 모든 책임은 경찰에게 있고, 그 경찰을 담당`관리하는 국가와 정부가 그 책임을 져야한다고 단언할 수 있다.

 김석기 경찰청장이 문책에서 유임쪽으로 생각을 하는 여당(한나라당)의 의견을 접했다. 정부가 잘못을 했으면 잘못을 인정하고 그 책임을 지고 문책하는 것이 아닌 지난 역사교과서 논란처럼 또 자신들의 과오를 은폐하는 것에서 그 해법을 찾고 있다는 사실에 정부에 실망 아닌 실망을 한다.